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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쾌락 과잉 시대…행복 되찾으려면 고통과 마주하라

■도파민네이션 (애나 렘키 지음, 흐름출판 펴냄)

뇌 신경전달물질 도파민 영향

쾌락 추구할수록 고통도 커져

더 큰 자극 쫓아가다 결국 중독

단순 약물 치료보다 '절제' 중요

자기 구속으로 '평형' 찾아가야





19살 케빈은 학교를 가려 하지 않았고 가정 내 규칙도 지키지 않았다. 부모는 아들에게 정신적 고통이나 스트레스를 줄까 두려워 내버려 뒀다. 케빈은 늘어지게 잠자기, 비디오 게임, 코카인, 섹스 등을 뭐든 마음 내키는 대로 했다. 그는 든든한 가족, 질 좋은 교육, 양호한 건강 등의 혜택을 누리면서 매일 순간적인 쾌락을 즐겼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별로”라며 불만족스러워 했다.

신간 ‘도파민네이션’은 쾌락 과잉 시대에 적당한 고통은 나쁜 것이 아니라 행복의 동반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현실이 고통스럽더라도 도피하지 말고 직시해야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중독치료센터 소장인 저자 애나 렘키는 최신 뇌과학·신경과학 연구와 20년간 자신의 임상 상담 사례를 통해 중독에서 벗어나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해서는 도파민의 법칙을 이해하고 고통과 화해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고 말한다.

도파민은 쾌락과 고통에 관여하는 인간 뇌의 주요 신경전달물질이다. 도파민은 ‘보상 그 자체의 쾌락을 느끼는 과정’보다는 ‘보상을 얻기 위한 동기 부여 과정’에 더 관여한다. 이 때문에 유전자 조작으로 도파민을 만들 수 없게 된 쥐들은 음식이 코앞에 놓여 있어도 굶어 죽는다. 하지만 음식을 입안에 넣어주면 씹어 먹으며 즐기는 것처럼 반응한다.

또 쾌락과 고통은 뇌의 같은 영역에서 처리되며 저울의 서로 맞은 편에 놓인 추처럼 작동한다. 우리가 쾌락을 경험할 때 도파민이 분비되고 저울은 쾌락 쪽으로 기울어진다. 문제는 저울이 자기조정 메커니즘에 따라 수평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결국 쾌락 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은 반작용 때문에 수평에서 멈추지 않고 쾌락으로 얻은 무게만큼 고통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더구나 어느 순간 임계점이 넘으면 마약·알코올·포르노 등 어떤 강력한 자극을 주어도 뇌는 더 이상 쾌락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특히 현대사회의 인간은 마약, 담배, 알코올과 같은 중독성 물질은 물론 음식, 뉴스, 도박, 쇼핑, 게임, 채팅, 음란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트위터 등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자극들에 둘러싸여 있고 누구도 중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그는 “스마트폰은 컴퓨터 세대에 쉴 새 없이 디지털 도파민을 전달하는 현대판 피하주사침이 됐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초콜릿을 한 조각 먹으면 다음 조각이 또 먹고 싶어지는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지금의 우리는 더 많은 보상을 얻어야 쾌감을 느끼고, 상처가 덜하더라도 고통을 느낀다”고 말한다. 우리는 행복해지려고 중독 대상에 매달리지만 역설적으로 행복에 과도하게 중독되면서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저자는 중독 문제를 개개인의 일탈로 보고 약물 처방, 심리 치료, 도덕적 각성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서구의 치료법을 비판한다. 중독은 지구의 죽음까지 위협하는 현대 자본주의의 과소비와 디지털화가 결합한 현실 때문에 생겨나는 것으로 모두의 문제이며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령 중독은 가난하고 교육 수준이 낮은 계층, 특히 선진국의 저소득층에서 많이 발생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에 따르면 의료 기술 발전에도 학사 학위가 없는 중년의 백인 미국인들은 자신의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보다 이른 나이에 사망한다. 주요 사망 원인은 약물 과용, 알코올 관련 간 질환, 자살 등이다.

그렇다면 중독에서 벗어나 삶의 균형을 찾는 방법은 무엇일까. 렘키는 “회복은 절제로부터 시작한다. 이를 통해 더 단순한 쾌락에도 기뻐할 수 있게 된다”며 “고통 쪽을 자극하면 우리의 평형 상태는 쾌락 쪽으로 다시 맞춰진다”고 말한다. 그는 관음증에 빠져 자위 기계를 만드는 실리콘밸리 과학자, 13년 동안 수십 종의 약물을 전전한 대학생, 음식 중동으로 시작해 트럼프식 음모론에 빠진 여성, 인스타그램 때문에 현실 감각을 잃어버린 한국인 유학생 등 다양한 중독자들의 사례를 통해 그 첫걸음은 ‘고통과 직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자신의 상태 이해, 중독의 목적과 문제점, 절제, 금단 증세 이후 자신의 고통을 들여다보기, 진짜 나와 대면하기, 중독 대상과 새로운 관계 맺기 등의 과정을 거치라고 조언한다. 또 공간, 시간, 의미를 제한해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3가지 자기 구속 전략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흡연자가 승진할까지 금연에 성공하면 자기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 방식이다. 또 책에서 한 알코올 중독자는 맥주 한 병을 냉장고에 ‘토템(신성한 존재)’처럼 모셔놓고 세상의 많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부담스러운 임무보다 오직 단 한 병의 맥주를 안 마시는데 집중한다.

책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쾌락·고통·행복 등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저자는 “우리는 고통에서 도망치려고 약물 복용, 넷플릭스 몰아보기 등 자신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기 위해 거의 뭐든지 하려 든다. 하지만 이 모든 회피 시도는 고통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며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세상에 몰입함으로써 탈출구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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