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밀값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만이 아니다. 이상기후에 따른 작황 악화마저 겹치면서 설상가상인 상황이다. 특히 국내 밀 주 수입처인 미국에서 가뭄으로 밀 생산에 비상이 걸려 밥상 물가를 자극할 것이라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
4일 식품 업계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밀가루 등 원자재 가격이 고공 행진하면서 동네 빵집·칼국숫집·만둣국집 등 자영업자들의 피해가 심각하다. 세계 밀 수출량의 약 29%를 차지하는 양국이 밀 수출을 제한한 탓이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밀 수출국이고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빵 바구니’로 불린다. 밀 가격 상승의 여파는 국내 식품 기업과 소상공인·자영업자들에게 그대로 미치고 있다. 이날 권영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도 “최근 밀가루 가격이 30% 가까이 올랐다”며 “범부처 차원의 대책이 급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전쟁이 끝나도 밀값 전망이 긍정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이상기후로 밀 생산에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수급 여건 악화로 올해 밀값이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밀값은 전쟁 전부터 오름세였다. 밀값 상승 폭은 2019년 6.75%에서 2020년 13.48%, 2021년 22.07%로 점점 커졌다. 수입 단가도 뛰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밀 수입 단가는 톤당 320달러로 평년(280달러) 수준보다 높다. 밀을 주로 수입하는 미국과 호주 등의 작황이 좋지 않은 게 더 문제다. 지난달 미국 최대 밀 생산지인 캔자스주의 경우 가뭄이 덮쳤다. 미 농무부에 따르면 지난달 13일 기준 캔자스산 밀 중 23%만이 ‘양호한 상태’로 분류됐다. 전년 동기 대비 15%포인트 적다.
특히 국내 밥상 물가는 밀값에 극히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의 밀 자급률이 0.8%(2020년 농촌진흥청 기준)에 그치기 때문이다. 반면 밀 소비량은 늘고 있다. 제분협회에 따르면 1인당 밀가루 소비량은 2011년 32.8㎏에서 2015년 33.7㎏, 2019년 34.2㎏으로 불어났다. 한 농업정책 연구원은 “밀을 다량으로 구입하는 대기업보다 소규모 업체의 피해가 더 클 것”이라며 “이들을 집중 지원할 수급 안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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