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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대통령의 시간

김능현 산업부 차장


대통령 제도의 원조격인 미국은 역대 대통령마다 그 직을 인수하는 과정이 천차만별이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 인수 과정에서 6m 높이의 브리핑 책자를 받았다. 반면 존 케네디 전 대통령은 당선 직후 측근이 작성한 몇 쪽 분량의 비망목만을 받고 어젠다를 설정했다. 두 사람 중 누가 더 성공한 대통령일까.

대통령직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5년 단임제인 우리나라는 더욱 그렇다. 대다수의 대통령학 전문가들은 대통령이 일종의 시간적 모순을 겪는다고 지적한다. 임기 초반에는 국민적 기대와 막강한 권력, 무엇인가 해보겠다는 충만한 에너지를 보유한 반면 국정 운영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는 부족하다. 임기 중반으로 가면 반대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지식과 정보는 많아지지만 지지층이 이탈하면서 권력 누수 현상이 일어나 어젠다 설정에 제약을 받는다. 대통령학 전문가 풀 라이트는 저서 ‘대통령의 어젠다(President's Agenda)’에서 “대통령은 임기 첫해 엄청난 혼란을 겪는다. 대통령과 참모진이 혼란을 수습하고 나면 기회가 사라진다. 임기 3~4년 차에 대통령과 참모진의 국정 숙련도는 높아지지만 어젠다 설정은 제한된다”고 썼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지난 한 달여간 각 부처의 업무 보고를 받고 일부 장관 인선을 마무리했다. 인수위 책상에는 아마도 부처 업무 보고 자료부터 여러 단체의 정책 제안서까지 수많은 서류가 쌓여 있을 것이다. 문제는 서류의 양이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 중요한 일은 어젠다 설정이다.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공약집의 소소한 약속과 문재인 정부 실정의 뒤치다꺼리는 각 부처에 맡기고 5년 내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핵심 어젠다를 정하는 것이다. 많을 필요는 없다. 대통령의 어젠다는 10년 후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3~4개면 족하며 무엇보다 실현 가능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를 반면교사 삼을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교육 개혁, 부동산 때려잡기, 남북 관계 개선 등 수많은 어젠다를 늘어놓고 밀어붙였다. 하지만 탈원전과 부동산 시장 개혁은 비과학적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정책으로 실패했고 교육 개혁은 법정 공방이 뻔히 예상되는 자사고 폐지와 교육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대학 입시 제도만 만지작거리다 5년을 허비했다. 남북 관계는 상대방이 있는 게임이기에 애당초 대통령이 주도권을 가질 수 없는 사안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 취임 직후 핵심 어젠다를 발표하고 전광석화처럼 밀어붙여야 한다. 국민연금 개혁, 줄 세우기 입시의 원인인 대학 서열화 완화와 다양성 확대, 규제 개혁 등 개별 부처가 할 수 없는 수많은 과제 중 일부를 선정해 화력을 집중해야 한다. 대통령의 자산은 빨리 써버리지 않으면 그 가치가 떨어진다. 케네디는 취임 10일 만에 국정 어젠다를 담은 연두교서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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