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기술을 육성할 때 기존 양떼기 식 특허가 아닌 미중 등 각각의 나라에 대응한 특허 질적 관리에 나서고 국제표준 선도를 적극 추진해야 합니다.”
김명준(67·사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은 11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기술주권 시대에 전략기술 확보는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라며 이같이 밝혔다. 프랑스 낭시제1대학교 전산학 박사로 ETRI맨인 그는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장을 지낸 뒤 2019년부터 ETRI를 이끌며 특허의 질적 관리와 인공지능(AI) 교육 플랫폼 확산 등에 나서고 있다.
그는 “우리가 특허 전반적으로 보면 이미 주요 5개국(G5) 수준으로 오르기는 했으나 AI 특허라든지 핵심 경쟁력을 보면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면서 기술 패권 전쟁을 하는 양상”이라며 “산학연 차원에서 특허 전략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이어 “국제표준을 선도하려면 전문가들을 5~10년 이상 키워야 한다”며 “국제기구의 작업반장이나 부반장으로 많이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과의 과학기술 동맹도 필요하고 유럽도 중요한 파트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ETRI가 지난 5년간 국제 공동연구(50건)에서 절반을 미국과 했다. 대부분 대학과 같이했다”며 “다만 유럽연합(EU·35%)과의 협력 비율은 주요국별로 2~3건에 그쳐 전략적 협업을 늘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프랑스·벨기에·스위스·독일 등의 연구기관장과도 인적 교류와 공동 연구개발(R&D)에 나서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국방·안전, 의료·복지, 교통, 에너지·환경 등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국가 임무형 연구 확대도 그의 역점 포인트다. 그는 “ETRI는 1990년대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의 이동통신 개발 등 임무 지향형 R&D를 추구해 왔다”며 “초지능·초성능·초연결 등 전략기술 육성을 위해 출연연은 물론이고 산학연이 벽을 트고 거국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한 ‘민관 과학기술위원회’가 이런 역할을 했으면 한다는 게 그의 희망이다.
그는 전략기술 육성 방향과 관련, “반도체·디스플레이·2차전지 등 초격차가 가능한 기술은 기업 중심 R&D로 가되 정부는 원천기술 확보와 인재 양성에 신경을 써야 한다”며 “AI·바이오·양자 등 미래 전략기술은 R&D 기초·원천 연구에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SW 중심 대학이나 AI 대학원에서 양성하는 인재만으로는 부족해 기존 개발자나 기술자를 재교육해 현장에 투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ETRI는 AI 연구소를 만든 데 이어 AI 아카데미도 신설해 지난 2년간 전체 연구원의 절반 가까이 되는 900여 명을 재교육했다. 그 결과 연구원들이 정부나 공공기관·기업에서 R&D 과제를 수주할 때 선정 비율이 60%가량으로 무려 20%포인트나 높아졌다. 그만큼 R&D 제안 품질이 향상된 것이다.
김 원장은 “지난해부터 AI 교육 플랫폼을 다른 24개 과학기술 출연연에 개방한 데 이어 내년에는 국방기관과 공공기관에도 개방할 것”이라며 “국가적으로 디지털 대전환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뿌듯해했다.
그는 “ETRI는 화합물 반도체 파운드리를 확보해 대기업이 하지 않는 기술을 확보하고, 마이크로 LED 기술도 개발해 디스플레이 초격차 유지에도 기여할 것”이라며 “지난해부터 6G 기술 개발에 나선 데 이어 6G 시대에 필수인 저궤도 위성통신 기술 개발 사업의 예비 타당성 검토도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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