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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배터리만 바라보는 '고립무원' 한국경제[양철민의 경알못]

자유무역 붕괴와 신냉전 도래로 한국경제 휘청

韓日관계악화·中 강압 외교에 국제관계도 막막

반도체가 핵심무기라지만.. 메모리반도체 美·日 장비 없으면 못만들어

모바일칩은 애플에, 파운드리는 TSMC에 각각 밀려

전기차배터리는 中에 점유율에 이어 기술력도 뒤쳐질 판

LFP 배터리 선호하는 테슬라의 '판바꾸기' 전략도 부담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 10일(현지시간) 구조요원들이 러시아군의 폭격을 받아 폐허로 변한 건물 잔해를 헤치고 있다. 연합뉴스




글로벌 경제가 심상찮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자원부국’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 제재로 니켈과 석유 가격이 치솟고 있으며 곡물가격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지속적인 경고로 사회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쉽게 간과하는 위험 요인을 뜻하는 또다른 ‘회색 코뿔소’가 등장할 것이란 우려가 상당하다. 이 같은 글로벌 ‘자원위기’는 무역의존도가 압도적으로 높은데다 에너지 소비량 글로벌 7위에 달하는 한국경제에 치명타다.

정부는 그래도 여유가 있어 보인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비롯한 차기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한국이 반도체나 배터리와 같은 ‘미래산업의 원자재’를 갖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오히려 경제안보를 위한 지렛대로 이들 기술을 활용할 경우,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을 상대로 한 한국의 발언권이 높아질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과연 그럴까. 우선 정부 일각에서 낙관하는 그 같은 시나리오는 실현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한국의 주력 제품 및 산업 모델이 이 같은 글로벌 경제질서 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 탓이다.

냉전과 수출주도형 경제모델.. 한국경제에 날개


한국은 1960년대부터 인력자원에 대한 투자와 중화학공업 위주의 ‘수출주도형’ 경제성장 모델로 빠른 성장을 이뤄왔다. 서방국가들의 계속되는 각종 지원도 성장배경 중 하나다. 실제 중국과 소련 등 사회주의 진영과 국경을 마주한 한국은 자유주의 진영에서 ‘최전선’과 같은 의미를 가졌다. 1980년대 당시 ‘아시아의 4용(龍)’이라고 불렸던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4개국은 모두 사회주의 국가와 국경을 마주한 나라들이다.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가 빠른 성장의 원동력이 된 셈이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춤한 성장전략도 주효했다. 한국은 일본과 미국 등에서는 선진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당시 임금대비 숙련도가 높았던 노동력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였다. ‘잠자는 용’ 중국이 문화혁명 등 갖가지 내분속에 시장 개방을 미뤄왔던 것 또한 한국에게는 호재였다.

한국 경제는 냉전체제 붕괴 후 1995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또다시 비약적 성장을 이루게 된다. 글로벌 분업체제 완성 속에서 중국이라는 ‘거인의 등’에 올라타 ‘중진국의 함정’에서 벗어나며 선진국 문턱까지 다달았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단군 이후 ‘지금 현재 한국의 국력이 가장 높다’는 분석마저 나왔다.

자유무역주의 쇠퇴에 신냉전 도래한 2022년 .. 한국경제 날개 꺾이나


2022년. 한국 성장의 지지대 역할을 해주던 이 같은 버팀목은 사라졌다. 우선 각국이 권위주의 진영과 자유주의 진영으로 나뉘어 ‘으르렁’ 거리고 있다. 중국·러시아·이란 등의 권위주의 국가와 미국과 유럽연합 등의 자유주의 진영간의 ‘신냉전’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내 편에 서라’는 신호는 강해진다.

반면 한국은 좌고우면 하고 있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한다는 이른바 ‘안미경중(安美經中)’ 전략은 ‘무임승차’를 용납하지 않는 미국의 실리주의 정책에 힘을 잃고 있지만 여전히 주판알만 튕긴다. 중국 또한 ‘요소수 사태’ 등으로 언제든 한국 경제의 목을 죌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내지만 ‘소국(小國)’을 자처하며 제 목소리를 못낸다.

한국경제의 2차 도약대가 됐던 자유무역시대도 붕괴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 등 기술도가 높은 국가에서 핵심 부품을, 자원부국인 호주나 칠레 등에서 구리나 석탄같은 원자재를 사들여 중간재를 만든 후 이를 ‘세계의 공장‘인 중국에 수출하는 형태의 모델로 승승장구 했다.

이 같은 모델은 현 정부들어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본은 지난 2019년 한국 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고순도불화수소 등 핵심 원료 3가지에 대한 수출을 제한했다. 일부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공장이 가동을 멈출뻔 할 정도로 한국경제의 위기였다. 업계에서는 “왜 한일관계 악화에 따른 피해를 기업이 떠안아야 하냐”는 볼멘 소리가 잇따랐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이후 한국산 철강을 예년대비 70%만 수입토록 하는 등 ’자국 일자리 지키기‘에 혈안이다.

한국이 내놓는 카드는 통하지 않았다. 세계 최대 조선회사를 만들기 위한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간 기업결합은 유럽연합(EU)의 견제로 실패했다. 반면 중국은 자국산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에 보조금을 몰아주는 방식을 통해 CATL과 BYD와 같은 글로벌 최고 수준의 이차전지 업체를 육성했다. 이 사이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1위 자리를 내줬다.





정부 또한 대책을 고민중이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다. 오히려 정부간 밥그릇 싸움만 엿보인다. 외교부는 차기 정부에서 몸집을 키우기 위해 산업부의 통상기능을 내놓으라며 인수위의 엄중경고가 있기 전까지 치열한 여론전을 펼쳤다. 일본 수출규제와 관련해 외교부 책임론이 비등했지만, 차기정부 실세를 앞세운 외교부는 조직 논리가 우선이다.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서도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부분이 다수다. 중국과 미국 사이의 ‘줄타기 외교’가 시효가 다 했다는 분석에도, 여전히 중국에 편향된 ‘중립외교’를 외칠 뿐이다. 미국이 중국 압박용으로 형성한 안보협력체 ‘쿼드’는 중국 눈치 때문에 가입여부에 대해 여타부타 말을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또 다른 조직이나 회의체 신설이라는 ‘옥상 옥(屋)’ 구조를 통한 면책시도는 반복된다. 정부는 지난해 9월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를 신설하겠다며 “최근 경제·기술·안보 등이 연계·통합된 형태의 국가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경제대응 포지셔닝에 전략적·정무적 판단이 함께 고려될 필요가 있다”며 확실한 대응을 다짐했다. 반면 한달 뒤 발생한 요소수 부족사태를 통해 ‘옥상옥’ 회의체의 무능함만 보여줬다.

경제적 실책도 여럿이다. 탈원전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늘어난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은 매년 수조원의 손실을 안기고 있다. 원전 인력의 해외 이탈과 관련 기술 미개발에 따른 손실까지 감안하면 탈원전 관련 피해만 최소 수십조원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론적 분석도 없이 묻지마 식으로 강행된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일자리 양극화와 키오스크 등 각종 기계의 기존 일자리 잠식으로 이어졌다.

반도체와 배터리만 믿으라고? 불안불안한 ‘경제안보 지렛대론’


그렇다면 한국이 압도적 초격차를 보유하고 있다는 반도체와 배터리가 한국경제의 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 이또한 실제 면모를 보면 ‘사상누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압도적 점유율을 자랑하는 메모리 반도체는 기술력이 물론 중요하긴 하다. 다만 좋은 제품을 값싸게 만드는 ‘규모의 경제’ 확보야 말로 한국 업체들이 보유한 핵심 경쟁우위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이 때문에 한국 반도체의 경쟁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성능 장비’가 필수다. 안보유망기술센터(CSET)에 따르면 미국 기업은 반도체 증착 관련 장비의 63.8%를 점유하고 있다. 에칭(53.1%), 공정제어(71.2%), 기계연마(67.5%), 이온주입(90.4%) 등에서 압도적 점유율을 자랑한다. 미국의 전체 반도체 장비시장 전체 점유율은 41.7%에 달하며 일본의 점유율은 31.1% 수준이다. 반면 한국의 글로벌 반도체 장비 시장 점유율은 2.2%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D램 시장은 미국의 마이크론이 20% 가량의 점유율로 글로벌 3위를 유지중이며 낸드플래시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외에 일본 키옥시아와 마이크론 등 대체제가 많다. 각국이 공조해 한국의 반도체에 타격을 입히려 할 경우, 한국 업체들이 방어해 내기가 불가능 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시스템 반도체 분야 또한 마찬가지다. 해당 분야에서는 애플과 TSMC 등 1등 기업과 한국 기업간의 격차가 크다. 삼성전자는 올해 출시한 플래그십 스마트폰인 ‘갤럭시S22’ 국내향 모델에 자신들이 설계한 ‘엑시노스2200’가 아닌 퀄컴의 스냅드래곤을 탑재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이 국내향 모델에 엑시노스를 탑재 못한 이유로 수율 문제를 들고 있다. 이외에도 엑시노스 시리즈는 발열과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에서 일부 문제를 노출하며 예전보다 평가가 떨어지고 있다.



반면 애플은 전성비(전력 대 성능비)를 압도적으로 개선한 AP인 ‘바이오닉’ 시리즈를 통해 플래그십 스마트폰 시장에서 절대강자 자리를 굳히고 있다. PC용 칩 시장에서도 경쟁 업체 대비 기술력이 몇년은 앞섰다 평가받는 ‘M1울트라’ 칩을 내놓으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파운드리 시장에서도 한국의 지위는 위태위태 하다. TSMC는 글로벌 시장에서 과반의 점유율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으며 인텔, 엔비디아, 애플, 퀄컴 등 글로벌 선두업체의 주문이 몰리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 고객군은 이 보다 ‘네임밸류’가 낮으며 수율 문제에 대한 우려도 일부 제기된다.

배터리 또한 마찬가지다.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1위 업체는 지난해 32.6%의 점유율을 기록한 CATL이다. 4위는 중국업체 BYD다. 이들은 자국 전기차 시장을 바탕으로 몸집을 키운 것도 있지만, 이제는 기술력도 앞서 있다. 실제 CATL은 이달 ‘기린’이라는 3세대 배터리를 내놓았다. 기린은 테슬라가 최근 생산에 나선 ‘4680’ 배터리 대비 13% 가량 밀도가 높다.

테슬라와 중국업체들이 배터리 업체 판을 바꾸려는 시도 또한 한국업체에 큰 위협이 된다. 테슬라는 한국 업체들이 강점을 갖고 있는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가 아닌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보급에 힘을 쏟고 있다. 니켈 수급 문제 때문으로, LFP 배터리는 NCM 배터리 대비 가격이 저렴하다. 런던 금속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니켈 1톤당 가격은 3만 4100만달러로 1년전 대비 2배 이상 오르며 니켈 수급 문제로 전기차 보급률이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CATL 또한 LFP 배터리에서 다수 핵심 기술을 보유중이다.

무엇보다 중국은 전세계 리튬 공급의 70%를 장악하고 있다. 중국 최대 리튬 공급업체인 톈치리튬은 지난 2018년 칠레 최대 리튬 생산업체 SQM의 지분 23.77%를 인수한 바 있다. 지난 2014년에는 세계 최대 리튬광산인 호주 탈리슨의 경영권을 확보했다.

NCM 배터리의 핵심원료인 코발트 또한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 저장화유코발트, 진천그룹 등 중국 기업은 세계 최대 코발트 생산지인 콩고민주공화국의 광산 인수 및 지분 투자 방식을 통해 콩고에서 채굴한 코발트의 90% 이상을 자국으로 수입 중이다. 전세계 코발트 생산량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60%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업계 전문가는 “한국산업은 글로벌 자유무역 기조하에 ‘소품종 대량생산’에 장점을 가진 사업모델을 기반으로 발전해 왔다”며 “중국이 디스플레이와 스마트폰 등에서 이미 한국의 사업모델을 차용해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한데다, 선제적 자원 투자에 나섰던 중국과 달리 한국은 향후 자원 수급난을 겪을 수 있어 예전과 같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양철민의 경알못’은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10년 넘게 경제 기사를 썼지만, 여전히 ‘경제를 잘 알지 못해’ 매일매일 공부 중인 기자가 쓰는 경제 관련 콘텐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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