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50주년을 맞은 정호승 시인이 신작 우화소설집을 출간했다.
책에 실린 17편의 우화소설의 주인공은 망자(亡者)가 입는 수의, 못생긴 불상, 걸레, 숫돌, 오래된 절간 화장실의 받침돌 같은 하찮고 보잘것없는 존재들이다. 네팔 룸비니에서 만들어진 못생긴 부처 조각상은 자신을 사서 책상에 올려놓고 심란할 때마다 말을 거는 남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은 것이고,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가면” 된다고. 대웅전의 대들보나 목불(木佛)이 되고자 했던 ‘참나무’는 장작이 됐다. 차밭의 싱그러운 환경 속에서 안락하게 지내던 바윗돌은 더러운 변소의 기둥을 받치는 신세가 된다. 하지만 그들은 묵묵히 견디어 더 높은 삶의 경지에 다다른다. 이처럼 작가는 흔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미물들이 지금의 그 모습에 이른 궤적을 추적하면서 그 시간과 경험, 깨달음 위에 우화의 세계를 지어 올렸다.
저자는 “자연과 사물과 인간이 지니고 있는 삶의 이야기를 우화소설의 그릇에 담을 때 시가 소설로 재탄생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됐다”면서 “인간의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가치인가, 그 가치를 통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우화의 방법으로 성찰했다”고 밝혔다.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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