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술주권 경쟁으로 전략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가운데 우리가 뒤처진 분야로 바이오, 인공지능(AI)·모빌리티·로봇, 우주·항공, 양자, 사이버 보안을 들 수 있다. 이 분야는 성장 동력 확충은 물론 안보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차기 정부에서 미래 전략기술로 집중 육성할 필요가 있다. 선도국과의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해외 개방형 공동 연구도 늘려야 한다. 대학·정부출연연구기관·기업에 지원하는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올해 30조 원)의 글로벌 공동 연구 비중이 2%가 안 되는데 최대 5%까지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은 “산학연정이 도전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R&D를 통해 신속한 기술 확보와 상용화 추진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격차 큰 전략기술 기술주권 시급=바이오는 건강, 경제 성장, 외교안보 파급력이 커 민간 기업의 스케일업이 중요하다. 우리는 세계 2위권 바이오 의약품 제조 역량을 갖고 있으나 글로벌 제약사에 비해 기술·자본력·지식재산권·인지도 등이 크게 떨어진다. 물론 제약 기술 수출이 2020년 11조 원이 넘었으나 블록버스터급 신약이 나온 게 없다. 아직 바이오 헬스 한류 시대는 먼 얘기다.
AI는 다양한 산업 응용(AI+X)을 위한 기반 기술로 안보 가치도 크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이 인재를 독식하고 투자를 크게 늘리면서 격차가 더 벌어지는 양상이다.
우주·항공은 위성 분야는 세계 7대 수준으로 평가되나 발사체의 경우 올 6월 한국형 발사체(누리호)의 저궤도(700㎞) 공략 성공을 기대할 정도로 뒤처져 있다. 민간의 자립 기반도 열악하다.
양자기술은 양자암호통신(보안)과 양자컴퓨팅(암호 체계 무력화) 등 안보 가치가 크고 신약 개발, 금융 혁신 등을 촉발할 게임체인저로 꼽힌다. 하지만 미국·중국·유럽 등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 게 현실이다.
사이버 보안도 해킹 등의 급증에 따라 총제적 대책이 요구되지만 아직은 기술 수준이 적잖게 떨어져 있다.
◇빠른 추격 넘는 국가 전략 마련해야=바이오 중 합성생물학 기술은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 개발에 기여했다. 생물무기로 활용되면 안보 위협도 크다. 유전자 편집 등 유전자 통합 제어, 초고속 백신 개발·제조, 데이터 접목 바이오 R&D, 디지털 정밀 의료도 매우 중요하다. 항암제 개발사를 창업한 윤채옥 한양대 생명공학과 교수는 “AI와 데이터를 접목한 후보물질 개발, 임상 시험, 사업화를 연계하고 합성생물학 등 국가적 바이오 생명공학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 유럽연합(EU) 등과의 전략적 협력, 해외 인수합병(M&A), 기업 스케일업 등도 과제다.
AI는 미중 기술 냉전의 첨예한 격전지로 십수 년 전부터 논문·특허 생산량에서 중국이 미국을 추월했으나 질적으로는 미국이 앞서 있다. 우리는 머신러닝 원천 기술과 자율주행 통신 시스템, 차량용 반도체·센서·소프트웨어(SW) 등의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 민간의 AI 컴퓨팅 시설 투자 세제 지원, 거대 AI 공공 인프라 구축·개방, 자율주행 통신·도로 인프라 실증 등 민간 역량 강화도 요구된다. 빅데이터 활용도 늘려야 한다.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AI 기초·AI 반도체·AI+X(신물질·신약·바이오·자율주행차) 연구에 댜한 정부의 과감한 지원, 인력 양성을 위한 대학 혁신, 기업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국방부에 국방과학기술위원회가 신설되기도 했으나 국방과 산업 간 시너지 효과도 절실하다.
자율주행차 등 모빌리티와 로봇 분야도 발 빠른 추격이 필요하다. AI 클라우드컴퓨팅 인프라, AI 기반 무인 로봇 전투 체계, 드론·도심항공모빌리티(UAM) 육성이 중요하다.
우주·항공은 미국·중국·러시아·EU·일본 등에 비해 크게 뒤져 있으나 나름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한미 미사일 지침 해제와 미국 주도 심우주탐사 프로젝트(아르테미스)에 동참하기로 한 데 이어 차기 정부도 항공우주청을 만들기로 했다. 다만 우주 컨트롤타워의 위상이 낮거나 R&D, 인재 양성, 국방, 뉴스페이스(민간 주도 우주개발)가 안 되면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 위성 충돌 회피 SW사를 창업한 김덕수 한양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발사체와 위성 탑재체 기업들에 공공기술을 이전하고 부처 간 위성 공동활용과 위성 데이터산업 육성에 나서 뉴스페이스 시대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양자기술은 미·중·일·EU 등이 경쟁적으로 지원하는데 우리도 도전적 연구가 필요하다. 국가 간 수출 통제를 위한 바세나르 체제에 포함될지를 놓고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우리는 2026년까지 50큐비트 양자컴퓨터 개발, 게임체인저형 양자 소재 개발, 한미 공동 연구센터 설립, 양자기술 지원법률을 추진 중이나 아직 역부족이다.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양자기술은 연구 인력이 많지 않아 몇 년 전 예비타당성 검토에서 탈락했는데 다시 예타를 수립 중”이라고 전했다.
사이버 보안은 경제·안보 등 국가 인프라의 보호막이자 방패로서 중요하다. 최근 삼성·LG·MS 등에 대한 국제해킹그룹(랩서스)의 정보 유출 사례도 발생했다. AI 활용 사이버 대응, 인재 양성, 사이버 무기 체계 전력화도 시급하다. 영세 개발사가 다수인데 산학연 협의체를 꾸려 AI 기반 보안관제·자동대응, 6세대(6G)·양자보안기술 등의 로드맵도 수립하고 표준화도 추진해야 한다. 스타트업의 평가·인증 과정에서 비용·시간 감축도 이슈다.
◇도전적 R&D, 인재 양성, 국제 표준화 필요=민관이 함께 도전적 R&D를 본격화해야 한다. 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은 “출연연과 협회·단체 등을 기술전략센터로 지정해 산학연 파트너십을 강화해야 한다”며 “출연연 중심으로 산학연이 기술 축적과 산업 경쟁력 강화, 인력 양성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략 기술별로 인력 수급 전망을 세워 국내외 핵심 인력 파악과 인재 양성, 해외 인재 유치에 나서야 한다. 개방형 글로벌 공동 연구 확대, 국제 표준화 기구 활동 강화, 연구 단계에서 글로벌 기술 보호 논의 참여도 중요하다. 반도체·디스플레이·태양광 장비사인 주성엔지니어링의 황철주 회장은 “반도체 강국이라고 하나 장비와 소재·부품은 상대적으로 열악해 집중 육성해야 한다”며 “주성은 고졸과 전문대 출신도 연구원으로 키우는데 기업들이 기술 인재 양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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