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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무역도 종교도…1000년전 세계화의 유산

■1000년

발레리 한센 지음, 민음사 펴냄





“거리는 스리랑카산 진주 목걸이, 아프리카산 상아 장신구, 티베트산 안정제와 소말리아산 안정제가 들어간 향료, 발트해 호박을 가공해 만든 병,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항목으로 만들어진 가구를 구매하는 손님으로 북적인다.”

신간 ‘1000년’에서 저자인 발레리 한센 미국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가 묘사한 기원 후 1000년 중국 푸젠성 도시 취안저우의 거리 풍경이다. 지금 우리는 흔히 15세기 말 포르투갈 탐험가 바스쿠 다 가마가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 항로를 개척하면서 대항해시대가 열렸고 세계도 연결되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한센은 무역과 종교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이보다 500년 전에 세계화가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1018년 사망한 요나라 황제의 손녀 진국공주의 묘에서는 시리아, 이집트, 이란, 발트해에서 온 부장품이 발견됐다. 또 저자는 1000년 무렵 아프리카에서는 금과 노예를 중심으로 중계 무역이 활발했고 대항해시대 이후 유럽인들은 이 같은 교역망에 편승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상품, 기술, 종교, 사람들이 본고장을 떠나 새 지역으로 갈 수 있게 되면서 세계사는 일대 전환점을 맞게 된다. 10세기경 카라한 왕조 등 중앙아시아 튀르크계 부족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했고 동쪽의 불교 왕국 호탄을 정복하면서 지금의 신장위구르 지역이 이슬람화하기 시작됐다. 같은 시기 동유럽에서는 루스인들의 지도자 블라디미르 1세가 정교회를 선택하면서 유럽은 카톨릭과 정교회 국가로 나뉘게 된다. 오늘날 종교 신자의 92%가 힌두교, 불교, 기독교, 이슬람 등 4대 종교 중 하나를 믿는 것도 1000년 전 유산의 결과물이다.

무역 통로 개척은 각지를 하나로 묶어주면서 특정 지역의 풍요와 쇠퇴, 지적 풍부함과 문화적 분열, 신기술의 확산과 전통 공예의 소멸, 지배와 갈등 등을 일으켰다. 중국 송나라는 무슬림 소비자를 겨냥해 아랍 문자 문양의 도기를 만들어냈다. 이슬람 도공들은 진주광택을 내는 새 도기를 개발해 대항했지만 경쟁력을 잃고 말았다. 카이로와 콘스탄티노플, 광저우에서는 신흥부자와 외국 상인들을 공격하는 세계 최초의 반세계화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저자는 “예나 지금이나 세계화는 승자와 패자를 함께 만들어내기 마련이며 모두가 그 혜택을 입은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생소함에 개방적인 사람들이 새것에는 무조건 손사래를 친 사람들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얻어 낸 것은 변하지 않는 진실”이라고 말한다. 2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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