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다양한 고민거리가 생긴다. 재산 승계도 그중 하나다. 특히 우리나라는 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 고민이 더 깊어진다. 부동산 그 자체로 물려주면 자녀들의 분쟁이 걱정되고, 그렇다고 부동산을 처분해 현금화하게 되면 처분하는 기간 동안 겪어야 하는 번거로움과 양도세에 대한 중압감을 이겨내야 해서다. 그뿐인가. 어렵게 부동산을 정리하고 나면 재산 승계에 대한 숙제를 해결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심리적 허탈감이 남기도 한다. 최근 부자들이 재산을 승계하는 데 있어 유언 대용 신탁을 많이 활용하는 이유다.
유언 대용 신탁은 금융회사에 자산을 맡기고 살아있을 때는 운용수익을 받다가 사망 이후 미리 계약한 대로 자산을 상속 혹은 분배하는 계약이다. 이 유언 대용 신탁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내 마음대로 설계가 가능하다’는데 있다. 예를 들어 사후 5년 후 부동산을 처분해 자녀들에게 똑같이 분배해 달라는 조건을 걸면 그 조건에 따라 재산을 처분해 그 대금을 수익자에게 교부하는 식이다.
또 다른 장점은 사후에 유언이 확실히 집행된다는 점이다. 재산 상속을 위해 많이 이용하는 유언장은 법적 효력을 가지려면 엄격한 요건이 필요하다. 자필 작성 여부, 날짜, 주소 등 한 가지 요건만 만족하지 못해도 유언이 무효가 돼 뜻대로 상속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어 불확실성이 크다. 반면 신탁은 자산 소유권이 금융사로 넘어가고 금융사는 계약에 따라 처분하기 때문에 계약이 그대로 이행된다. 만약 재산을 관리하는 금융회사가 파산하더라도 신탁재산은 보호돼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다.
반드시 재산 승계를 위해서만 유언 대용 신탁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22 코리안 웰스 리포트’에 따르면 유언 대용 신탁을 이용하는 50~60대 중에는 혼자 지내는 싱글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가족의 구조가 변화하면서 자녀가 없거나, 있어도 자녀에게 상속을 원하지 않을 때도 유언 대용 신탁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추세다.
최근에는 이혼과 재혼 가정이 많아지면서 젊은 세대들도 유언 대용 신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이혼 혹은 재혼을 앞두고 상속 설계를 위해 유언 대용 신탁 상담을 받으려는 이들이 많아졌다”며, “재혼을 앞두고 친자와 새로운 배우자 등에 승계할 자산 비율을 정할 때 유언 대용 신탁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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