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합병(M&A)의 귀재’로 불리는 차석용 LG생활건강(051900) 부회장이 미국 화장품 기업 ‘더 크렘샵(The Creme Shop)’을 인수한다. LG생활건강이 북미 지역에서 기업과 판권을 확보한 네 번째 사례로 세계 최대 화장품 시장에서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코로나19로 불확실성이 커진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해외 영토를 다변화하려는 LG생활건강의 전략도 한층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지난달 주주 총회에서 6번째 연임에 성공한 차 부회장은 2005년 취임 이후 코카콜라음료(2007년), 더페이스샵(2010년) 등 28건의 굵직한 M&A를 성사시킨 주역이다. 화장품 뿐 아니라 생활용품과 음료까지 안정적인 '삼각편대'를 구축해 온 부회장의 인수합병 능력은 북미 시장 확장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20일 미국 화장품 기업 ‘더크렘샵’ 지분 65%를 1485억 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는 2013년 일본 화장품 기업 에버라이프(3076억)와 2020년 피지오겔 아시아·북미 판권(1900억) 인수 이후 세 번째로 큰 규모다.
크렘샵은 색조에 강점을 지닌 뷰티 기업으로 최근 3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30%에 달한다. 미국 ‘얼타 뷰티’를 비롯한 오프라인 매장을 중심으로 성장을 거듭해왔으며 헬로키티·디즈니·BT21과의 협업 상품으로 미국의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사로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부터는 자사몰을 육성하면서 아마존과 같은 디지털 채널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K콘텐츠의 강세로 미국 내 K뷰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크렘샵이 보유한 헤리티지와 현지 영업망을 활용해 미주 사업을 육성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인수는 LG생활건강이 꾸준히 진행해 온 ‘북미 시장 확대’의 결과물이다. 북미는 그 규모만 50조 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화장품 시장이다. LG생활건강은 2019년 미국 화장품 기업 뉴 에이본(1450억)을 시작으로 2020년 ‘피지오겔’ 사업권, 지난해 헤어케어 브랜드 ‘알틱 폭스’(1170억) 등에 잇따라 투자하며 최근 4년간 이 지역에 6000억 원에 육박하는 자금을 투입했다.
연이은 기업 인수의 최종 목표는 ‘후’의 미국 진출이다. 올해 신년사에서 북미 시장의 사업 확장을 주문한 차 부회장은 “아시아에서 큰 성장을 이룬 ‘후’의 북미시장 진출을 위해 북미 고객들이 선호하는 향과 용기 디자인을 적용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꾸준한 투자로 LG생활건강의 북미 지역 매출도 2019년 2765억 원에서 지난해 5163억 원으로 87% 증가했다. 해외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3%에서 19%로 커졌다.
북미시장 확대는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전략이기도 하다. 중국은 LG생활건강 해외 매출의 50%를 차지한다. 과거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던 면세 사업과 함께 중국 매출은 고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2017년 고고도미사일체계(사드·THAAD)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수익성이 현저히 떨어진 상황이다. 지난해 4분기 화장품 부문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4%, 17% 감소했다. 실적 부진에 연초 110만 4000원(1월 7일 종가)이던 LG 생활건강 주가는 한때 80만 원대까지 고꾸라졌다. 최근 90만 원대를 회복했지만, 중국 내 신규 확진자 증가에 따른 지역 봉쇄 영향으로 주가는 고점 대비 크게 떨어진 상태다. 뷰티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미국 시장 확보가 필수적”이라며 “LG생활건강이 중국에서는 럭셔리를 중심으로, 북미에서는 생활 뷰티 기업으로 포지셔닝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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