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다극화되는 세계 질서에 맞춰 국제 통상 전문가들은 미국 등 우방국과의 공급망 동맹을 강화하는 동시에 반도체와 배터리 등 핵심 기술 개발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우리가 세계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반도체 경쟁력을 지렛대로 삼아 대외 협상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2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 질서는 신냉전 시대로 변화가 고착화하는 상황”이라며 “이러한 시기에 출범하는 차기 정부도 기존의 경제안보 정책을 전면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을 차기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정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각국마다 가장 중요시하는 문제 중 하나는 흔들리는 공급망의 안정성을 높이는 일”이라며 “새 정부의 경제안보 정책도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는 데 가장 중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과 일본 등이 주도하는 새로운 경제협력체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기존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다자 무역 체제가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지역과 이념 등을 고리로 한 경제 블록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제사회에서 WTO라는 큰 우산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를 비롯한 다양한 경제 통상 협력체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이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에 맞춰 IPEF가 한미정상회담의 의제로 다뤄질 것”이라며 “공급망 재편 문제에 관해 미국과 보조를 맞추는 데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대선 기간 IPEF를 통해 역내 국가들과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다만 우리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도 호의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운용의 묘를 잘 살린 통상 전략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조언도 뒤따랐다.
반도체와 배터리 등 핵심 기술 개발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 교수는 “세계적으로 주요 핵심 기술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이 강화되는 추세인데, 우리는 정부가 말만 했지 실질적 대책은 없었다”며 “보다 내실 있는 정책이 새 정부에서 마련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를 토대로 경쟁 우위에 있는 우리의 핵심 기술을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반도체의 경우 최근 중국이 많이 쫓아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우리의 경쟁 우위가 확보된 분야”라며 “핵심 기술을 앞세워 대외 협상력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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