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을 겨냥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가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을 재판에 넘기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수사가 시작된 지 8개월 만이다. 공수처가 이 기간 검사 인력 절반을 투입하고도 정작 의혹의 핵심인 고발장 작성자는 물론 윗선 규명에도 실패해 수사가 ‘용두사미’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수처 고발 사주 의혹 수사팀(팀장 여운국 차장)은 4일 공무상 기밀누설, 공직선거법·개인정보법·형사사법절차전자화촉진법 위반 등 혐의로 손 보호관을 불구속 기소했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은 무혐의 처분했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검찰로 이첩했다. 손 보호관과 공모 관계가 인정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으나 공수처법상 기소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공수처는 손 보호관이 2020년 4월 김 의원에게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황희석 전 법무부 인권국장 등 범여권 인사를 상대로 한 1·2차 고발장과 ‘검언유착 의혹’을 언론에 처음 제보한 일명 ‘제보자X’ 지 모 씨의 명예훼손 사건 실명 판결문 등을 두 차례에 걸쳐 전달한 점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고발장을 누가 작성했는지에 대해서는 ‘증거 불충분’으로 밝혀내지 못했다. 즉 작성자를 특정하지 못해 부하 검사에게 의무 없는 일을 시킨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할 수 없었고, 윤 당선인 등 윗선에 대한 수사로도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이 공수처의 설명이다.
공수처 측은 “윤 당선인이 고발장을 작성하도록 지시한 게 아닌가 하는 고소·고발인의 의심으로 고발된 사건이나 고발장 작성자 특정 단계에서 혐의 없음 처분을 했다”며 “현재 단계에서 수사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인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문제는 고발 사주 의혹을 겨냥한 공수처 수사가 손 보호관 기소 외에 윗선은 물론 작성자 등까지 규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수사 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으면서 정치 중립성은 물론 수사 신뢰성까지 비판 대상에 올랐다. 공수처는 시민 단체로부터 고발장이 접수된 지 사흘 만인 지난해 9월 10일 윤 당선인 등을 피의자로 입건한 뒤 곧바로 손 검사와 김 의원 등을 상대로 속전속결로 강제 수사에 착수했다. 공수처의 이례적인 속도전을 두고 ‘대선 개입 의도’라는 정치권의 비판이 나왔지만 공수처는 “중대 범죄에 대한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특히 수사 과정에서도 인권침해 수사, 통신 사찰 등 논란까지 불거졌다. 급기야 지난달 열린 공수처 공소심의위원회는 손 검사에 대해 불기소를 권고했다. 결국 공수처는 윤 당선인에 대해 서면 조사도 하지 못한 채 이번 의혹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의 총선 개입 사건’이라고 결론 내렸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