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기업 근로자들의 임금이 최근 큰 폭으로 올라가면서 다른 산업군 기업까지 연쇄적으로 임금 인상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노동조합이 있는 기업의 경우 일부 기업의 높은 임금 인상률을 근거로 생산성 증가 없이 임금 인상을 주장해 기업의 비용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카카오(035720)는 4일 실적 발표에서 올 1분기 인건비가 전년 동기 대비 43% 늘어난 4200억 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3년 전인 2019년 1분기만 해도 전체 영업 비용 중 인건비가 약 23%를 차지했는데 올 1분기 28%로 늘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남궁훈 카카오 대표는 최근 올해 인건비 총액을 지난해 대비 15% 늘린다고 발표했다.
경쟁사 네이버의 올 1분기 인건비·복리후생비도 전년 대비 15% 증가한 3812억 원을 기록했다. 전체 영업 비용 중 24% 수준이다. 올해도 임직원 연봉 재원을 지난해보다 10% 늘린다는 방침이다.
수백억 원 규모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들도 인건비 경쟁에 동참하고 있다. 한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유명 대학원 연구실에서 인공지능(AI)을 전공한 전문연구요원도 병역 특례로 1년여간 근무하면서 연봉만 1억 원을 훌쩍 넘었다”고 귀띔했다.
이 같은 문제는 일반 제조업 내 기업들에까지 연쇄적으로 파급되고 있다. 자동차·조선·철강 업계에서도 생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IT 관련 인재 영입에 나서고 있다. IT 기업들 역시 사업 영역을 제조·유통으로까지 확대하면서 대기업 인력 이탈이 빨라지고, 다시 임금 인상 경쟁에 나서고 있다. 제조업 내 노조들은 이 같은 전방위적인 임금 인상을 이유로 생산성 향상 없는 임금 높이기에 돌입하고 있다.
실제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소속 현대제철(004020) 노조원은 이달 2일 충남 당진제철소에 있는 사장실을 점거해 사흘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 노조는 “지난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낸 만큼 3~4월에 400만 원의 특별 격려금을 지급한 현대차·기아 등처럼 우리도 똑같이 특별 공로금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제철의 경우 전체 비용(판관비)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17년 현대제철이 지출한 급여는 1391억 원으로 판관비에서 13%가량을 차지했는데 지난해에는 2180억 원으로 전체 판관비의 20% 수준까지 올라왔다.
최근 노조 파업에 돌입한 현대중공업(329180)도 지난해 급여로만 1327억 원을 지출했는데 이는 전체 판관비의 22% 수준으로 전년 대비 4%포인트 올랐다. 다른 비용보다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외형이 줄어들어도 임금이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대우조선해양(042660)은 지난 5년간 매출이 60% 하락했지만 같은 기간 직원 1인당 평균 연봉은 6000만 원에서 6700만 원으로 11% 상승했다.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자동차 생산 공장 근로자들은 최근의 반도체 수급난에 지난 반 년 동안 근로시간이 반 토막 났다”며 “수급난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생산성이 떨어져도 임금은 하락하지 않고 오히려 계속 상승 압력을 받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현대차·기아 노조는 올해 교섭안에서 기본급 16만 5200원 인상과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지급, 정년 연장 등을 요구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