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지수가 외국인의 매도 폭탄에 힘없이 떨어지며 올 들어 최저치를 기록했다. 코스피 시장의 거래 대금이 9조 원대 초반으로 내려앉으면서 그동안 하방 압력에 대해 강력한 지지선 역할을 해왔던 동학개미들의 화력도 시들해지는 모습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시계마저 빠르게 돌면서 2500선까지 하단을 열어둬야 한다는 어두운 전망이 제기된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경계심이 극대화하는 국면에서 국내 기업들의 체력(실적)이 개선되고 있다며 하락 폭이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9일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27% 떨어진 2610.81에 거래를 마쳤다. 5거래일 연속 하락 마감한 것으로 종가 기준 연저점이자 2020년 11월 이후 최저치다. 올해 장중 기준 연중 최저치인 1월 28일의 2591.53도 조만간 갈아치울 기세다. 수급 주체별로 개인은 3392억 원 규모를 사들였지만 외국인이 2279억 원, 기관은 1434억 원을 팔아치우며 지수를 끌어내렸다. 특히 외국인들의 공격적인 선물 매도가 오후 들어 낙폭을 키웠다. 이날 외국인의 선물 매도 금액은 3424억 원이었다. 코스닥지수도 2.64% 내린 860.84를 기록하며 사흘째 하락 마감했다. 이날은 하락 종목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코스피는 총 940개 중 816개가 하락했고 상승 종목은 88개였다. 코스닥 종목은 1557개 중 1295개가 하락했으며 상승 종목은 136개에 불과했다.
매도 규모가 크지 않았음에도 증시가 힘없이 무너지는 것은 거래 대금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이날 코스피 시장 거래 대금은 9조 2897억 원에 그쳤다. 이달 들어 코스피 시장의 일평균 거래 대금은 9조 6128억 원으로 줄었다. 지난달에는 10조 8667억 원이었다. ‘동학개미 운동’으로 증시가 불붙었던 지난해 1월(26조 4778억 원)과 비교하면 60% 가까이 급감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주식시장이 흔들렸던 2020년 같은 기간(10조 6555억 원)과 비슷한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연준의 ‘빅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후폭풍이 이어진 영향이 컸다. 또한 인플레이션 우려를 좌우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 코로나19 봉쇄 조치 등의 변수도 지수를 무겁게 짓눌렀다. 특히 러시아는 이날 제2차세계대전 종전 기념일(전승절)을 맞아 열병식을 개최한 가운데 서방국가들을 상대로 핵 위협에 나서기도 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연준 긴축 부담이 잔존하는 가운데 미국채 금리 상승 압력과 중국의 봉쇄 조치 강화 등 불확실성 요인이 지속되며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며 “미국 시간 외 선물이 1% 가까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도 부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달러 강세가 이어지며 원·달러 환율이 1280원 선에 한층 다가선 점도 외국인의 ‘셀코리아’를 부추겼다.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원 30전 오른 1274원에 마감했다. 6일의 종가 기준 연고점인 1272원 70전을 경신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연준의 긴축 드라이브와 경기 둔화 우려가 맞물리면서 비관론에 무게를 싣고 있다. 11일 발표될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추이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하반기까지 부담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현재 증시에 물가, 금리 인상 악재는 반영됐지만 하반기 이후 경기 둔화에 대한 부분 크게 반영되지 않았다”면서 “금리보다는 경기에 대한 우려가 지속되면서 당분간 약세장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변준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순환적 패턴을 볼 때 주요 경기 선행지표는 하반기에도 지속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고 고물가와 금리 급등에 따른 소비 심리 위축이 가시화돼 내년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IBK투자증권은 하반기 코스피 예상 밴드로 2400~2850을 제시했다.
다만 국내 기업들의 체력(실적)이 고갈되지 않았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기업의 이익 체력이 높아진 데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이 나온다는 점에서 5월부터 시장 체력이 개선될 것”이라고 했다. 홍콩계 증권사 CLSA도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 기업들의 매력적인 밸류에이션, 새 정부의 비즈니스 및 시장 친화적인 정책, 그리고 한국 기업들의 주주 친화적인 정책 등은 증시에 우호적인 요소”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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