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사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고려저축은행 지분을 지키면서 계열사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미 지난 3월 태광그룹은 금융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이 전 회장은 고려저축은행의 대주주 적격성 유지를 위해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했다. 앞서 2020년 금융위는 고려저축은행의 지분 30.5%를 보유한 이 전 회장이 대주주 적격성 유지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며 6개월 이내에 요건 충족을 명령했다. 이 전 회장은 기간 내에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고 금융위는 상호저축은행법에 따라 고려저축은행 보유 주식의 10%가 넘는 주식(45만 7233주)에 대해 처분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법원은 금융위가 “대주주 적격성 유지 심사 제도를 2010년 9월 이후 발생한 불법행위부터 적용한다”고 밝힌 점을 들어 이 전 회장에게 관련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앞선 형사재판에서 이 전 회장이 유죄를 선고받은 혐의 중 다수는 2010년 9월 이전에 발생했다고 조사됐고 이외 혐의들은 2010년 9월 전후에 걸쳐 포괄일죄(여러 범행이 하나의 죄를 구성)로 인정됐다.
고려저축은행의 지분을 지키기는 했지만 이 전 회장의 공식적인 경영 복귀는 불가능하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집행이 끝난 날로부터 5년간 취업이 제한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은 보유 지분을 토대로 그룹 전반에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는 태광그룹의 화학·섬유 계열사인 태광산업의 지분 29.48%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며 태광그룹 금융계열사인 흥국생명의 지분 56.30%를 가지고 있다. 흥국생명 지분을 통해 흥국화재와 예가람저축은행도 간접 지배하고 있다.
금융업계에서는 이 전 회장이 이번 승소를 발판으로 이미 시작된 계열사 지배력 강화와 체질 개선에 나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올해 초 이 전 회장은 금융계열사인 흥국생명과 흥국화재의 대표를 임형준 전 한국은행 부총재보와 임규준 전 금융위원회 대변인으로 교체했다. 공직 및 언론 출신의 금융사 CEO 선임은 이례적이다. 업계에서는 이 전 회장이 경영에 공식적으로 복귀하고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려면 금융 당국과 언론 등 대외 소통이 중요한 만큼 대외 관계 역량 강화를 하기 위한 인사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그룹 내 체질 개선의 움직임도 포착된다. 흥국화재는 최근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에 나섰다. 태광그룹 계열사인 티시스에서는 직원 30명과 콜센터 직원 5명이 4월 말부터 대기발령을 받았다. 다만 이에 대해 태광그룹 측은 “그 정도 규모의 인원이 새로 발령받은 것은 맞지만 대기발령은 아니다”라며 “기존 업무와의 연관성이 아주 없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일각에서는 이 전 회장의 경영 복귀에 앞서 태광그룹이 공격적인 투자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태광그룹은 이 전 회장의 횡령·배임 사건이 불거진 후 대규모 신규 투자가 거의 없었다. 현재 태광산업의 현금성 자산만 지난해 말 기준 1조 4000억 원을 상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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