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워홈 창업주인 구자학 회장이 12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故)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인 구 회장은 LG 계열사의 전문 경영인으로 활약하며 한국 생활용품·건설·화학 산업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0년에는 LG유통(현 GS리테일)의 일개 사업부였던 푸드서비스 부문을 분리 독립시킨 후 아워홈이라는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냈다.
1930년 7월 15일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구 회장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령으로 전역했다. 이후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셋째 딸인 이숙희 씨와 결혼하면서 재벌 ‘혼맥’을 이었다. 1960년 한일은행을 시작으로 호텔신라와 제일제당, 럭키(현 LG화학), 금성사(현 LG전자), 금성일렉트론(현 SK하이닉스), LG건설(현 GS건설) 등 산업 전 분야에서 1세대 전문 경영인으로 활약했다.
고인은 1980년 럭키 대표이사 재직 시절 당시 세계 석유화학 시장 수출 강국인 일본과 대만을 따라잡기 위해 기술 개발을 특히 강조했다. 당시 그는 “우리는 지금 가진 게 없다. 자본도, 물건을 팔 수 있는 시장도 없다”며 “오직 창의력과 기술, 지금 우리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국내 최초로 내열성이 뛰어나 스마트폰 등에 쓰이는 플라스틱 폴리부틸렌테레프탈레이트(PBT)를 개발해 한국 화학 산업의 일대 전기를 마련했다. 금성일렉트론에서는 세계 최초로 램버스 D램 반도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구 회장은 평소 ‘국민의 건강한 삶’을 경영 목표로 삼았다. 1981년에는 잇몸 질환을 예방하는 ‘국민 치약’ 페리오를 개발했고 1985년에는 화장품 ‘드봉’을 해외에 수출하는 성과를 냈다. 2000년에는 LG유통 푸드서비스사업부를 분리 독립해 아워홈을 만들고 20여 년간 회사를 이끌었다. 그동안 아워홈 매출은 2125억 원에서 지난해 1조 7408억 원으로 8배 이상 성장했다. 단체 급식과 식자재 유통 사업으로 시작한 아워홈은 현재 기내식 사업, 호텔 운영업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종합 식품 기업으로 거듭났다. 2010년 중국을 시작으로 베트남·미국 등에서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다.
음식에 대한 구 회장의 사랑은 남달랐다. 먹는 만큼이나 만드는 과정을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미국 유학 중 현지 한인 마트에서 직접 김치를 담그며 용돈 벌이를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아워홈을 창업하고 나서는 직접 현장을 찾아 임직원들과 머리를 맞댔다. 식품연구원을 설립할 당시 임원들이 “단체 급식 회사가 대량생산만 하면 되는데 굳이 연구원까지는 불필요하다”며 만류했지만 구 회장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현재 아워홈 식품연구원은 1만 5000여 건에 달하는 레시피를 보유하고 있으며 축산물위생검사기관 등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구 회장은 와병 직전 경영 회의에서 “요새 길에서 사람들을 보면 정말 크다. 얼핏 보면 서양 사람 같다. 좋은 음식을 잘 먹고 건강해서 그렇다”며 아워홈의 성장에 대해 뿌듯해했다. 그는 “은퇴하면 경기도 양평에 작은 식당을 하나 차리는 게 꿈”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아내 이숙희 씨와 아들 본성(아워홈 전 부회장), 딸 미현·명진·지은(아워홈 부회장) 씨 등이 있다. 구 회장의 장례는 이날부터 서울아산병원에서 회사장으로 4일 동안 치러진다. 발인은 15일이며 장지는 경기도 광주공원묘원이다. 장례위원장은 LG연암학원 이사장인 강유식 고문이 맡는다. 장례식장에는 아워홈의 깃발과 LG그룹의 조화가 나란히 놓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회장, 이재현 CJ 회장 등 재계 인사들도 조화를 통해 고인을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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