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은 구체제의 모순 때문에 일어난 필연적이고 정당한 사건이었다. 자유·평등·박애의 이념을 전 세계에 전파한 위대한 혁명이었다. 봉건제와 귀족 특권을 폐지해 시민사회 형성과 자본주의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유럽의 군주제 국가들은 혁명 세력의 공화정 선포와 루이 16세 처형에 위협을 느끼고 전쟁을 벌였다. 프랑스 혁명 정부는 국가와 혁명을 구하기 위해 과격한 공포정치를 실시했다. 그러나 민중들의 불만이 커지자 반동 세력이 일어났고 결국 로베스피에르 일파는 실각했다.’
국내 고등학교 교과서들이 프랑스 혁명을 옹호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신간 ‘프랑스혁명사는 논쟁 중’은 ‘인권’이라는 빛이 아니라 ‘폭력’이라는 어둠에 초점을 맞춰 혁명의 또 다른 이면을 들여다 본다. 저자는 한국프랑스사학회 회장을 역임한 김응종 충남대 사학과 명예교수다. 저자는 프랑스에서도 독재자 로베스피에르를 높게 평가하는 기존의 마르크스주의나 자코뱅(프랑스 혁명 당시 급진 세력) 편향의 해석에서 벗어나 자유주의·수정주의 해석이 힘을 얻고 있는데 정작 국내에서는 전통적인 시각에 갇혀있다고 지적한다.
가령 그는 국내에서 프랑스 혁명의 이념을 자유·평등·박애로 요약한다거나 프랑스 삼색기의 파란색, 흰색, 빨간색이 각각 이들 3대 이념을 상징한다고 이해하는 것부터 근거가 희박한 혁명 예찬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국내에서 박애로 번역되는 ‘프라테르니테’는 프랑스어로 ‘형제애’란 뜻이다. 저자에 따르면 형제애라는 말은 원래 프랑스 혁명 세력들이 형제만 사랑하고 형제가 되기를 거부하는 적에게는 ‘죽음’을 내리자는 적대적 구호로 쓰였다고 한다. 또 프랑스 국기의 파란색과 빨간색은 혁명을 일으킨 파리를, 흰색은 국왕을 나타나며 혁명과 왕정의 화합을 상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저자는 프랑스혁명은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위대한 실험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는 혁명은 ‘구체제의 파괴와 신체제의 건설’이라는 속성상 필연적으로 전대미문의 비극을 낳는다고 말한다. 혁명이 불가피한 만큼이나 반혁명의 저항도 격렬해지면서 폭력과 전쟁을 동반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불과 1년 동안의 공포정치 기간에 50만명이 투옥되고 3만명 이상이 처형됐다는 사실은 프랑스 혁명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특히 프랑스 서부의 방데 지방에서 농민들이 혁명 정부가 성직자들을 교회에서 쫓아내고 자신들을 강제 징집 하는데 반발해 반란을 일으켰을 때는 전체 주민의 20%인 17만명이 희생됐다. 혁명군은 전쟁포로는 물론이고 여자, 어린이, 노인들과 같은 비무장인들, 나아가 공화파 주민들까지 모든 주민을 체계적으로 학살했다. 역사가인 르네 세디요에 따르면 1789년 프랑스 혁명 발발 이후 혁명전쟁으로 40만명, 내전과 공포정치로 60만명, 나폴레옹 전쟁으로 100만명 등 1800년까지 총 200만명의 프랑스인이 사망했다.
“혁명, 그것은 순수, 선함, 독선, 위선, 오만, 광기가 용솟음치는 거대한 소용돌이이며, 잔혹한 격전장이다. 혁명은 전쟁이고 폭력이다. 혁명은 미래를 위해 희망의 이념을 제시했지만 현실에서는 엄청난 희생자를 발생시켰다.”
때로 혁명 세력은 혁명 그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 혁명 이념을 배신하기도 한다. 저자에 따르면 여자들의 이혼권, 유대인 시민권 부여, 노예 해방 등과 같은 프랑스혁명의 휴머니즘은 온건파인 지롱드파가 주도했다. 반면 로베스피에르가 이끄는 산악파는 내전과 외침으로부터 혁명을 구한다는 명목 아래 애국만을 강요했을 뿐 자유 등 인권선언의 모든 가치를 억압했다. 저자는 영국 작가 존 폴슨의 말을 빌어 “모든 폭정 중에서 최악의 폭정은 사상이 지배하는 무정한 전제정치”라고 말한다.
또 혁명은 폭력이라는 내재적 속성상 점차 극단적으로 바뀌면서 전체주의 독재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당초 프랑스 혁명은 자유와 평등을 양대 가치로 내세웠다. 하지만 과격파와 배고픈 민중들이 평등을 지향하면서 개인, 개인의 자유, 개인의 행복을 주장하는 것은 이기적이고 반혁명인 타도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공포정치를 낳는 것은 직접적으로 전쟁이지만 근원적으로는 혁명이었다. 민중이 계몽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진행된 혁명은 엄청난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을 프랑스 혁명은 잔인하게 보여줬다. 프랑스 혁명의 실상은 혁명을 이상적인 사회 변혁의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이상주의자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3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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