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에서 외국인투자가가 2년 5개월이라는 시간에 걸쳐 66조 원에 육박하는 주식을 팔아치우고 있는 현상은 흔한 일이 아니다. 외국인이 2년 연속 한국 증시에 대한 대규모 매도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과 순매도 규모가 이전 10년간 한국 증시를 사들인 규모인 54조 원을 20% 이상 웃돌 정도로 압도적인 것은 모두 2008년 이후 12년 만에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외국인의 역대급 ‘셀 코리아’가 이어지는 이유가 △코로나 이후 유동성 장세로 인한 증시 급등 현상 △코로나발 병목현상에 따른 원자재 값 상승(인플레이션) △미국(달러)의 강세와 중국 등 신흥국의 약세 등이 복합적으로 얽혔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외국인이 다시 한국 증시로 돌아올 때는 강달러가 꺾이는 시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1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투자가들은 5월 들어 코스피에서 1조 4449억 원, 코스닥에서 648억 원을 순매도하며 5개월 연속 순매도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외국인의 순매도 행진은 올 들어서뿐 아니라 2년 이상 계속되는 모습이다. 실제 외국인투자가들은 2020년부터 현재까지 2년 5개월에 걸쳐 코스피·코스닥 양대 증시에서 도합 65조 9356억 원을 팔아치우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27% 수준까지 내려앉았다. 2020년 2월 35%를 웃돌았던 비중은 쉼 없는 매도세 속에서 꾸준히 내려가며 8%포인트 가까이 하락한 것이다. 외국인 비중이 27%까지 내려온 것은 2009년 이후 13년 만의 일이다.
매도 기간이나 규모로 볼 때 이 정도 규모의 ‘셀 코리아’는 2006~2008년 이후 12년 만에 처음이기도 하다. 거래소 등에 따르면 외국인투자가들은 2006년부터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까지 3년간 코스피·코스닥에서 74조 1418억 원을 팔아치우는 순매도 랠리를 이어갔다. 당시 코스피가 개인들의 ‘펀드 투자 열풍’에 힘입어 사상 처음으로 2000포인트(2007년 7월 25일)를 돌파하는 등 상승세를 보인 가운데 외국인들의 매도 폭탄이 이어졌다는 점에서 지금 증시의 풍경과 비슷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코로나 이후 풀린 유동성이 증시로 몰리며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3300포인트를 돌파했고 외국인들은 줄기차게 매도세를 이어간 2020년 이후의 상황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금융 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시 한국 기업들의 실적이 오름세를 보인 가운데 증시에서는 개인들의 주식 투자가 부쩍 늘었고 그런 유동성에 힘입어 지수가 빠르게 상승했다”며 “급하게 끌어올려진 주식 자산의 가치는 ‘저평가’ 매력을 잃었고 이후 이어진 미국발 금리 인상 및 금융위기 등과 맞물려 거품이 꺼진 셈”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지금 외국인의 증시 이탈은 한국 증시에 매력을 잃어서라기보다는 신흥국 전반을 매도하는 움직임에 좀 더 가까운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외국인들이 올 들어 매도한 주식을 살펴보면 코스피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우선주 포함 6조 3933억 원)와 2위 LG에너지솔루션(3조 304억 원)이 전체의 77%를 차지하고 있다. 개별 기업이 아닌 시장을 매도하고 있는 셈으로 이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 등 제조업 중심의 신흥국 전반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외국인들이 ‘바이 코리아’를 시작하는 시점은 금리와 환율 등 매크로(거시경제) 환경과 관계가 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환율의 움직임을 눈여겨보라고 조언한다. 정명지 삼성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현재의 달러 강세에는 긴축에 대한 공포와 경기에 대한 구도, 지정학적 이슈 등 모든 악재가 녹아 있다”며 “미국 밖이 보텀아웃(저점 통과)하고 미국이 피크아웃(고점 통과)했을 때 달러가 꺾일 것이고 결국 달러가 꺾였을 때 신흥국이 예뻐 보이는 ‘리스크 온(위험자산 선호)’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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