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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尹정부 외교 정책에 거는 기대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86.8%. 얼마 전 한 여론조사 기관 설문에서 ‘한국이 최우선으로 협력해야 할 국가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우리 국민이 ‘미국’이라고 답한 숫자다. 이에 반해 북한은 5.0%, 중국은 3.2%에 불과했다. 국민 10명 중 약 9명이 미국을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협력 대상으로 본 것이다. 국민들도 경제와 안보 차원에서 미국의 중요성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 미중 무역 갈등 심화 등 국제사회가 마주한 파도 앞에서 냉철하고 정확한 판단에 따라 국가적 역량을 집중할 때다. 혹여나 잘못된 외교적 판단을 하게 되면 우리 세대뿐 아니라 미래를 이끌어갈 후대에도 큰 짐을 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직면한 백척간두의 위기 상황에서 과연 우리 대한민국호(號)는 어디로 향해야 할까. 문득 3년 전 고촉통 전 싱가포르 총리가 특별 대담회에서 전한 교훈이 떠올랐다.

싱가포르는 국토 면적이 서울의 1.2배에 불과한 작은 나라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복잡하게 얽힌 국제 이슈를 균형 있는 시각으로 풀어나가는 외교 강국이다. 싱가포르 사회는 중국계가 명백한 주류이고 중국과의 무역 비중도 약 14%로 가장 높다. 경제적으로 싱가포르에 가장 중요한 국가는 바로 중국이다.



그럼에도 고 전 총리는 당시 초청 대담회에서 싱가포르의 군사훈련에 대해 놀라운 이야기를 전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 둘러싸인 도시국가 싱가포르는 육군 기갑부대나 공군 전투비행단이 대규모 군사훈련을 할 장소가 없다. 이에 따라 1975년부터 대만에 위치한 야외 훈련장에서 군사훈련을 해왔다. 이는 1973년 리콴유 당시 총리가 대만 장징궈 행정원장과 합의한 ‘싱광계획’으로 1990년 싱가포르의 대중 수교 뒤에도 계속됐다. 훈련은 군의 기본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고 훈련하지 않는 군대는 존재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남부 하이난다오에 부지를 제공할 테니 훈련장을 옮기라고 싱가포르를 강하게 압박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고 전 총리는 중국에 “싱가포르의 안보보다 중요한 건 없기에 대만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다”고 강경하게 대응했다. 중국의 회유와 압력에도 고 전 총리는 굴하지 않았다. 결국 중국도 싱가포르의 경제적 중요성을 감안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일관되고 선명한 외교정책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이제 한국도 국민의 큰 기대를 안고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다. 싱가포르의 사례를 교훈으로 삼아 안보에 대해서는 일관되고 선명한 메시지를 보여줘야 한다. 더불어 관련 국가에는 지속적인 외교적 설득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21일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은 새 정부의 외교 역량에 대한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 문제, 인도태평양 지역 질서의 새로운 변화와 같은 주요 의제에 관해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기대한다. 대다수 국민들의 미국에 대한 기대감도 그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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