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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엔저' 수렁빠진 日처럼…韓도 '나쁜원저' 늪 빠지나

①환율 올라도 수출 뚝뚝…기업 脫한국에 가격경쟁력 약발 떨어져

② 中, 경제 불안 속 기술력·중간재 생산 확대…韓에 악재

③ 국민연금 등 기관·개인 해외투자 늘며 달러 수요 폭증

④ 韓 잠재성장률 떨어져 원화 매력 '뚝'…외화 유출 위협

"법인세 인하·규제 개혁 등 우호적 투자 환경 조성해야"





우리 경제가 원화 약세의 효과를 누리지 못하는 ‘나쁜 원저(低)’의 굴레에 빠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통상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빠지면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나아진다. 하지만 최근 공장 해외 이전 등으로 환율 상승의 순기능보다는 원자재 값 급등에 따른 수입이 더 크게 늘면서 경상수지가 나빠지고 있다. 이에 외환시장에서도 원화 매도가 나타나면서 다시 원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도 기업 환경 개선 등을 통해 우호적인 투자 환경을 조성하는 데 실패할 경우 자칫 나쁜 엔저의 늪에 빠진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17일 관세청 등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300원을 향해 단숨에 내쳐 달리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나라의 수출 증가율 둔화세가 뚜렷하다. 올 4월 수출 증가율은 전년 동월 대비 12.6%로 2월(20.6%), 3월(18.2%)보다 눈에 띄게 줄었다. 기획재정부도 5월 경제 동향에서 “수출 회복세의 제약이 우려된다”고 짚었다. 중국의 도시 봉쇄 등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원화 약세=수출 증가’ 등식이 이제는 무조건 성립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만만찮다.

이런 진단의 배경에는 기업의 탈(脫)한국이 자리한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제조업 부문의 해외 생산 비중은 2009년 11.2%에서 2017년 16.7%까지 불었다. 같은 기간 제조업 분야의 해외 현지법인 기업 매출 규모도 2.3배 증가했다. 반면 국내 제조업의 매출 규모는 1.6배 증가에 그쳤다. 제조업이 생산 기지를 해외로 옮기니 원화 약세에 따른 수출 증대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거미줄 규제가 유독 심했던 문재인 정부 기간에는 5년간 해외로 순유출된 기업 투자금이 56조 원에 달했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의 긴축 등은 예고됐던 악재”라며 “이런 상황에서 환율이 무서운 속도로 오르는 것은 우리 경제의 체력이 좋지 않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경제의 불안 조짐 속에서 기술 역량만큼은 크게 나아진 점도 악재다. 우리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지난달 수입은 전년 동기 대비 0.1% 줄었다. 도시 봉쇄 조치 탓이다. 문제는 봉쇄 조치가 해제되더라도 중국 경제가 예전처럼 성장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막대한 부채, 홍색 규제, 고령화, 서구 경제와의 갈등 등으로 중국 경제도 안으로부터 곪아가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전체의 25%를 차지하는 최대 수출 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중국이 반도체, 기계·부품 등에서 핵심 중간재를 자체 생산할 만큼 기술력이 올라오고 있는 것도 우리 기업의 입지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코로나19 이후 공급망 차질로 중국은 부품 소재의 자체 조달을 확대했다”며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이 지속될 경우 이런 경향은 더 강화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내에 달러 수요가 구조적으로 폭발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관과 개인을 가리지 않고 국내 투자자의 해외 투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매년 200억~300억 달러 규모의 해외 주식과 채권을 순매수하고 있다. 현재 약 44%인 해외 투자 비중을 2024년까지 55%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서학개미 열풍에서 보듯이 개인투자자의 해외 투자도 급증 추세다.

답답한 것은 우리 산업의 미래도 답이 잘 안 보인다는 점이다. 반도체에 과도한 의존을 하는 상황에서 신산업은 키우지 못했다. 이미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까지 떨어졌다. 김영삼 정부 당시만 해도 6%대였던 것이 5년마다 1%포인트 내려앉은 것이다.

물론 원화뿐만 아니라 유로화와 엔화 등 주요 화폐가치도 떨어지고 있어 우리만 크게 걱정할 상황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에 취약한 에너지·자원 빈국인 데다 공급망 교란에도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무역 의존형 경제인 우리는 더 힘들 수밖에 없다. 유럽이나 일본보다 펀더멘털이 더 약하다는 게 객관적 평가다. 특히 앞으로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주요 선진국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커 원화 매력도가 빠르게 하락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한국금융연구원은 현재 2% 안팎인 한국 잠재성장률이 2030년에는 0.97%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의회예산국이 추정한 2030년 미국 잠재성장률 추정치(1.7%)보다도 낮다. 장재철 KB국민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기업 활력을 높이고 성장 동력을 찾아 잠재성장률을 끌어 올릴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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