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기록매체 중 하나지만 언제나 새롭다. 15년 이상 책을 그리고 있는 서유라 작가의 작품도 엇비슷하다. 한결같은 책 그림이지만, 작품마다 새로운 분위기로 색다른 이야기를 전하는 서유라의 개인전 ‘그리고 봄’이 종로구 최정아갤러리에서 21일까지 열린다. 코로나19의 팬데믹을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한 올 봄 분위기를 겨냥한 듯한 노란색과 연두색, 하늘색 색조가 온화함을 전한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팬데믹 시기의 우울과 불안감이 짙었는데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좀 더 밝고 화사하게 그렸다”고 소개했다. 한옥갤러리의 공간성을 고려해 빈티지한 책들을 엄선한 것도 특징이다.
서 작가는 대학원생이던 지난 2007년, 도서관에서 책을 몇 권 꺼내 레고블록 맞추듯 이리저리 배치하다 문득 흥미를 느꼈고 책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그의 작품을 ‘신세대 책가도’라고 부르지만 정작 작가는 책거리처럼 정형화 된 틀을 거부하며, 책꽂이에 빽빽하게 꽂힌 형태를 그리지도 않는다. 누군가 관심을 갖고 책을 뽑아든 듯, 서유라의 책은 몇 권이 포개진 채 눕혀 있거나 좀 전까지 읽다가 잠시 덮어둔 듯 이리저리 놓여있는 식이다.
“책을 소재로 하는 화가는 많으니 제 나름의 스타일을 만들어보고자 했습니다. 정리돼 꽂힌 책들을 내맘대로 뒤죽박죽 섞어보면서 어린아이들의 놀이 같다는 생각을 했고, 이를 풀어본 게 작업의 계기가 됐습니다. 철학, 미술사, 여성학 등 주제별로 책을 모아보기도 하고, 색깔별로 분류해 그리기도 했습니다. 지식의 보고(寶庫)이기 때문에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책을 유희적으로 표현했죠.”
책의 배치를 바꾸면 그림맛이 달라진다. 책장을 구부려 하트 모양을 만들거나, 책끼리 등을 맞대 방사형으로 배치하는 등 변주를 시도한다.
서 작가는 2008년 종로구 가나인사아트센터 첫 서울 개인전을 열고 단숨에 스타 반열에 올랐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약 4년의 전시 공백기를 제외하면 1~2년에 한 번씩 꾸준히 개인전을 열어 존재감을 보여줬다. 지난해 프린트베이커리 한남점에서 열린 개인전은 MZ세대의 취향을 저격한 작품들이 ‘완판’되며 화제를 모았다. 작가는 “책이 갖는 고유성이 매력이라 계속 보여줄 것들,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난다”면서 “오래된 매체이면서도 늘 신선한 책의 ‘젊은 감성’을 간직해 더 확장된 신작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