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 열심히 돈을 벌어서 그랜저로 바꿀 수밖에 없는 건가요.”
지난 주 ‘국민 세단’ 쏘나타의 단종설이 국내 자동차 시장을 뜨겁게 달궜다. 현대자동차가 현재 판매 중인 8세대 쏘나타(프로젝트명 DN8)의 차세대 모델인 ‘DN9’를 개발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다. 현대차는 “쏘나타의 단종에 대해선 정해진 게 없다. 내년에는 부분변경 모델을 출시할 예정”이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통상 신차 개발에는 5년 안팎이 소요되는 만큼 2019년 출시된 8세대 쏘나타의 후속 모델이 현재 개발 계획조차 없다면 사실상 단종 수순에 들어간 것이란 게 대체적인 평가다.
국민차로 불리던 쏘나타의 단종 소식에 서운하다는 반응이 적지 않지만 쏘나타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1993년 출시된 3세대 모델을 시작으로 100만 대 이상씩 팔리던 쏘나타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건 7세대 LF쏘나타부터다. 2009년 선보인 6세대 YF쏘나타가 200만 대 넘게 판매되며 쏘나타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나 이후 7세대 모델이 164만 대, 8세대 모델은 출시 3년차인 현재까지 44만 대에 그치며 자존심을 구기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강력한 전동화 전환 기조도 쏘나타의 입지를 위태롭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현대차는 제네시스 브랜드를 포함해 2026년까지 전기차 84만 대를 판매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2030년에는 브랜드 내 전기차 판매 비중을 36%까지 높여 판매의 중심축을 아예 전기차로 옮겨간다는 의지다. 결국 DN9을 개발하지 않기로 한 현대차의 결정은 중형급 세단에 대한 선호도가 낮아지는 최근 트렌드와 내연기관차 시대의 종언이 맞물린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쏘나타는 정말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걸까. 현대차 내부적으로는 “절반만 맞는 이야기”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현대차는 전동화 플랜에 맞춰 이미 조직과 인력을 전기차 중심으로 바꾸기 시작한 상황. 쏘나타 단종설은 쏘나타 브랜드 자체가 없어진다는 것보다는 현대차의 중형 내연기관 세단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의미로 접근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다시 말해 쏘나타는 전동화 모델로 다시 출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만 이 경우 해당 차량을 그대로 쏘나타라고 부를지는 확정되지 않아 단종설이 흘러나온 것이라는 게 내부의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내연기관차 시대가 저물더라도 현대차가 ‘쏘나타’라는 이름을 어떤 식으로든 활용할 것이라고 본다. 쏘나타가 가진 브랜드 가치 때문이다. 40년 가까이 우리나라에서 중형 세단을 상징하는 모델로 자리매김해 온 국내 최장수 모델의 브랜드 가치를 그냥 포기하기엔 현대차 입장에서도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도 현대차가 브랜드 가치를 고려해 사라질 뻔 했던 차명을 전혀 새로운 모델에 활용한 전례도 있다. ‘아이오닉(IONIQ)’이 대표적이다. 아이오닉은 2016년 선보인 현대차 하이브리드·전기차 제품명이었는데 2021년부터는 전기차 전용 브랜드 명칭으로 현대차 전동화 전략의 선봉장에 서 있다.
더 많은 차량의 단종이 예정돼 있는 한국GM도 현대차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한국GM은 연말께 말리부와 트랙스를 단종하고 사업의 무게중심을 신형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로 옮겨갈 예정이다. 당장 올 하반기부터 창원공장에서 차세대 CUV의 시범 생산 등에 나선 뒤 내년 2월에는 본격적인 양산을 계획 중이다. ‘연간 50만 대 규모의 생산체계 구축을 통한 경영 정상화’를 내건 한국GM의 핵심 카드인 이 차량의 이름으로는 ‘트랙스(TRAX)’가 물망에 올랐다. 차명 후보군에 이제 막 단종을 앞둔 트랙스가 거론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GM이 주요 수출 국가인 북미 지역에서 트랙스의 이미지가 긍정적이라는 점을 고려해 차명을 그대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며 “자동차 회사가 어떤 모델을 하나의 브랜드로 키우고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는 적어도 수년이 걸리는 만큼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안전한 방식으로 기존의 명칭을 다시 활용하는 분위기가 나타날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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