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승 쿠팡 대표가 21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환영 만찬에 참석한다고 합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하는 기업인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5대 그룹 총수들과 경제단체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강 대표의 참석은 다소 이례적입니다.
여기에는 쿠팡이 한국에서 사업을 하면서도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한 기업이라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정상과 한국 경제계의 만남에서 한미 간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대표 기업인 셈입니다.
그런데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과정에서 쿠팡이 거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달 초 한미정책협의단이 정상회담 조율을 위해 미국 워싱턴DC를 찾았을 때도 쿠팡이 안건으로 논의됐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핵심 안건이 반도체 등 공급망 협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쿠팡이 그에 준하는 존재감을 보였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국이 이토록 쿠팡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미정책협의단의 방미 당시 논의된 것은 미국 국적인 김범석 쿠팡 의장의 동일인(총수) 지정 문제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김 의장을 포함한 외국인을 총수로 지정할 수 있도록 제도 변경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국정과제 이행 계획에도 포함됐을 정도로 공정위가 공을 들이는 사안입니다.
김 의장이 총수로 지정되면 지정 자료 제출 의무가 생겨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현황이나 계열사 현황 등을 보고해야 합니다. 자료 허위·누락 제출이 발견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 부과됩니다. 다만 외국인 총수가 지정된 전례가 없고 관련 제도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공정위는 올해까지 김 의장이 아닌 쿠팡 법인을 총수로 지정한 상태입니다.
문제는 김 의장의 총수 지정이 미국과의 통상 마찰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점입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최혜국 대우 조항에 따르면 미국인 투자자는 제3국 투자자에 비해 불리한 취급을 받아선 안 됩니다. 가령 에쓰오일의 사례를 문제 삼을 가능성이 생깁니다. 에쓰오일의 최대주주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기업인 아람코이지만 공정위가 사우디 왕실을 총수로 지정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공정위는 관련 법령을 개정해 총수 지정 요건을 구체화하면 통상 마찰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고 봅니다. 현재는 법령상 총수의 정의·요건이 불분명해 공정위의 자의적 판단이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공정위는 ‘한국계 외국 국적 보유 자연인’을 외국인 총수 지정 요건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때 에쓰오일이 나닌 쿠팡의 총수를 변경해야 할 필요성은 비교적 명확해집니다.
하지만 미국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 경우 설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통상 전문가들의 관측입니다. 자산 규모에 따라 대기업집단과 총수를 지정해 규제를 부과하는 곳은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총수 지정으로 인한 통상 마찰 가능성은 관련 규정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닌, 국제 통상 규범 측면에서 총수 제도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문제”라며 “우리나라의 독특한 기업 구조를 쉽게 이해받을 수 있을지 예상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재계에서는 쿠팡 이슈를 계기로 우리나라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인 대기업집단과 총수 지정 제도 폐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앞서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제도 도입 근거인 경제력 집중 억제의 필요성이 현재는 거의 사라졌고 과도한 규제로 오히려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악화됐다”며 “우리 경제가 폐쇄경제일 때 만들어진 대기업집단 지정 제도는 오늘날의 현실과 맞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럼에도 외국 국적을 이용한 총수 지정 회피 사례를 막기 위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 공정위의 입장입니다. 김재신 공정위 부위원장은 “동일인 지정은 외국인에게 형벌까지 부과할 수 있는 큰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라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면서도 “불확실성 해소를 위해 최대한 이른 시일 내 확정해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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