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사상 초유의 총재 공백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이달에도 한 번 더 금리를 올렸다. 한은이 두 달 연속 금리를 올린 것은 2007년 7~8월 이후 14년 9개월 만에 처음이다.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8%로 13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아 통화정책 대응이 시급한 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와의 금리 격차가 빠르게 줄고 있어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취임한 지 36일 만에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 콜금리 목표제가 시행된 1999년 이후 역대 최단기간 금리를 올린 총재가 됐다.
한은 금통위는 26일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1.75%로 0.25%포인트 인상해 통화정책을 운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금통위는 지난해 11월과 올해 1월에도 금리를 연달아 올렸지만 통방회의가 열리지 않은 12월이 중간에 있었지만 이번엔 불과 43일 만에 금리를 연속으로 올리게 됐다. 지난해 8월부터 긴축을 시작해 9개월 만에 다섯 차례 금리를 올리게 되면서 기준금리는 2018년 11월~2019년 7월(1.75%) 수준으로 올라섰다.
금통위가 이토록 이례적일 만큼 빠른 속도로 금리를 올릴 만큼 최근 물가 상황은 심상치 않다. 소비자물가가 상승세를 보이는 가운데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수입물가를 밀어 올리고 있고, 5월 기대인플레이션이 3.3%로 전월 대비 0.2%포인트 오르는 등 물가 기대 심리도 꿈틀대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이후 수요 측 물가 상승 요인도 나타나는 상황이다. 국회 심사 중인 2차 추가경정예산안 역시 물가 자극 요인이다. 현시점에서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이후에 인플레이션 대응이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미 연준과의 금리 격차가 빠르게 줄어드는 것도 금리 인상의 배경으로 꼽힌다. 이달 초 미 연준의 빅스텝(정책금리 0.50%포인트 인상)으로 한미 금리 격차는 0.50~0.75%로 좁혀졌다가 이날 한은이 금리를 올리면서 다시 0.75~1.0%포인트로 벌어졌다. 미 연준의 긴축으로 외국인 주식 투자 자금이 유출되고 환율 변동 폭이 확대되는 등 금융시장 불안 조짐도 금리 인상을 미룰 수 없었던 요인으로 풀이된다.
9개월 만에 기준금리가 0.50%에서 1.75%로 1.25%포인트나 오르면서 가계 이자 부담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지난달 기준으로 금리가 1.0%포인트 오르면 연간 가계 이자 부담이 13조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번 금리 인상으로 전체 이자 부담은 16.3조원이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차주 1인당 이자 부담도 80만 원 넘게 늘어날 전망이다.
물가 상황이나 주요국 긴축 속도만 보면 올해 남은 네 번의 금통위에서도 추가 금리 인상이 이뤄질 수 있다. 미 연준이 6월과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각각 빅스텝을 단행하고, 한은이 7월 금리를 동결하면 한미 금리는 역전된다. 문제는 한은의 긴축 속도가 과거 대비 빠른 수준이라는 것이다. 수출 둔화 조짐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경기 둔화 가능성,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 증가 등으로 무작정 금리를 따라 올리기도 쉽지 않다. 한은이 7월 금리 인상을 두고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서 전망했던 빅스텝은 없었다. 급격한 금리 인상이 경기 둔화와 가계부채 부실화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실제 빅스텝이 이뤄질 가능성은 낮았다. 이날 금통위원들이 만장일치로 금리 인상을 결정했는지, 빅스텝 인상 의견을 낸 금통위원이 있는지는 총재 간담회가 진행되는 오전 11시 10분에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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