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펄프가격 급등으로 제지 업계가 최근 시장의 주목을 받는 가운데 오너 3세들이 경영 전면에서 진두지휘하고 있어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보수적 조직인 제지업계에 유학파인 1970년대생부터 1990년대 MZ세대인 젊은 경영자들이 ‘책임경영’을 통한 위기 돌파에 나서고 있다.
창업주 할아버지와 기업 부흥을 이끈 아버지 세대에 이어 가업 확장의 의무를 짊어진 3세 경영인들이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제지업계의 기존 경영 방식에서 과감히 탈피해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유망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며 미래 먹거리를 찾아 나선 것이다.
26일 제지 업계에 따르면 깨끗한나라는 3월말 이사회를 통해 최병민 회장의 장남이자 미국에서 유학한 최대주주 최정규 기타비상무이사를 사내 등기임원으로 선임하면서 오너 3세 경영인이 다시 주목 받기 시작했다.
1991년생인 최 이사는 지분 16.03%를 보유해 최 회장은 물론 현재 대표이사인 누나 최현수(7.7%) 깨끗한나라 대표이사 보다 지분이 많다. 최 이사는 기획·회계·금융과 IT·PI 팀을 담당하고 있다. 누나 최 사장이 과거 경영기획실장과 경영기획담당 상무 등을 지내며 성장한 것처럼 최 이사는 위기에 놓인 그룹의 재무 구조 개선과 함께 경영 건전성 확보를 통한 국내외 및 제품별 사업 포트폴리오 개선과 그룹의 미래 먹거리 찾기 수순을 거치며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누나와의 경영 승계 경쟁이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오너 3세 경영인 가운데 가장 높은 성적표를 내고 있는 곳은 무림의 이도균 대표다. 미국 뉴욕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이 대표는 1978년생으로 2007년 무림페이퍼 영업본부로 입사했다. 제지사업본부와 전략기획실을 거쳐 약 14년간 경영 전반에 참여했다. 2010년에는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울산의 무림P&P 일관화공장 건설 현장에 직접 근무하며 국내 최초의 펄프와 제지 일관화공장 준공을 성공리에 이끌었다. 최근에는 플라스틱을 대체할 펄프몰드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보고 신소재 사업으로 낙점하고 연구개발(R&D)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제지 업계 1위인 한솔제지는 조동길 회장의 장남으로 프린스턴대 출신인 조성민 상무(1988년생)가 2016년 한솔홀딩스 입사 이후 2021년 상무 승진 첫해부터 나무에서 추출한 다양한 기능성의 친환경 첨가제인 나노셀룰로오스 등 신규소재 개발을 주도하며 차세대 먹거리 확보에 올인하고 있다.
단재완 한국제지 회장의 장남인 단우영 부회장은 1979년생이다. 해성그룹의 3세 경영으로 한국제지 등 해성그룹 주요 계열사의 사장직을 겸직하고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2008년 한국제지에 입사했다. 복사용지 브랜드 ‘밀크(miilk)’를 성공적으로 론칭해 입사 2년여 만에 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원창포장공업 인수를 시작으로 백판지 기업인 세하도 잇달아 사들였다. 세하는 국내 백판지 시장에서 15% 내외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빅3 기업이다. 최근에는 인쇄용지 등 제지산업에 주력하다 골판지와 판지 등 판지산업으로 그 중심축을 옮기면서 그룹의 지속성장을 위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제지 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 여파로 제지업계의 위기 요인이 많지만 오너 3세들의 적극적인 경영 참여로 기대감이 높다”며 “제지라는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했지만 결승선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갈래로 이들이 제지업계의 미래 사업지도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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