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진구에서 10년 이상 삼겹살집을 운영해오던 A씨는 지난달 건물주로부터 황당한 통보를 받았다. 보증금 1억 원, 월세 600만 원하던 임대료를 보증금 2억 원에 월세 700만 원으로 돌연 인상하겠는 것이었다. 건물주는 임대료 인상에 불복하면 명도소송을 걸겠다는 공문도 함께 통보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감액됐던 상가 임대료가 일상 회복에 따라 예전 수준을 회복하면서 건물주와 자영업자들 간의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매출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했고 여전히 매출 손실로 인한 빚 탕감에 허덕이고 있다고 토로한다.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감소 시 임대료 감액을 요구할 수 있게 됐지만 상인들은 건물주와의 관계가 우려돼 주저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상가임대차상담센터의 ‘보증금·임대료’ 관련 상담은 지난 1~3월 월 평균 229건에서 지난달 251건으로 10%가량 늘었다. 전체 상담건수 중 임대료 관련 상담은 코로나19 이전에는 줄곧 17% 내외를 유지하다가 2020년부터 21~22%대를 유지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일상 회복이 다가왔지만 여전히 관련 분쟁은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임대료 관련 상담은 2020년 10~11월, 지난해 3~4월 300건 이상으로 치솟는 등 거리두기 강도가 세질 때마다 급증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관련 분쟁이 계속되면서 서울시는 지난달 ‘찾아가는 분쟁조정위원회’를 개시하기도 했다.
자영업자들은 물가 인상 등 어려움으로 매출이 예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고 여전히 그동안의 손실로 인한 채무에 허덕이고 있다고 토로한다. 노원구에서 칼국수 집을 운영하는 이 모 씨는 “영업 제한이 없어지면서 상황이 좋아지는 줄 알았더니 이제는 식자재, 원재료 값이 크게 올라 수익이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종로구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김 모 씨는 “폐업만 하지 말고 버티자는 심정으로 가게를 운영해오느라 빚이 산더미처럼 쌓여 아직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2020년 개정된 상가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 등 감염병 상황으로 매출 감소를 겪을 경우 임대료 감면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강제력이 없을 뿐더러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건물주와의 관계가 틀어질까봐 함부로 감액을 요구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A씨는 “건물주와의 관계가 나빠지면 장기적으로 좋을 게 없다는 게 자영업자들의 공통된 인식”이라며 “다툼이 생기면 결국에는 자영업자가 ‘을’이 될 수밖에 없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실효성 논란이 계속되면서 법무부는 지난 3월 관련 법에 따른 세부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종로구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B씨는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영업을 계속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이지만 건물주 입장에서는 손해라고 생각되니 감액을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힘들다”면서 “건물의 가치를 높이는 데 자영업자도 한몫하는 만큼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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