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보다는 물가의 부정적 파급효과가 더 크게 예상되는 만큼 이를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결론입니다.”(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5월 26일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
“일본은행은 강력한 통화 완화정책을 끈기 있게 지속해 팬데믹에서 회복하고 있는 경제를 지원하겠습니다.”(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5월 30일 일본 참의원 예산위원회)
최근 한국과 일본에서 나타나고 있는 물가 오름세를 두고 양국 중앙은행인 한국은행(BOK)과 일본은행(BOJ)의 태도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한국은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8%로 13년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데 이어 5월엔 5%를 넘을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일본 역시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1%로 전월(0.8%) 대비 큰 폭 오르면서 2015년 3월 이후 7년 만에 물가안정목표치(2.0%)를 넘긴 상황이다. 소비세 인상 영향을 제외하면 2008년 9월 이후 최고치다. 두 나라에서 물가가 오르는 이유는 비슷하다. 코로나19 이후 발생한 글로벌 공급망 차질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원자재 가격과 곡물 가격이 오르자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는 것이다.
기대인플레이션이 오르는 것도 같다. 한국은 5월 조사에서 일반인 기대인플레이션이 3.3%로 전월 대비 0.2%포인트 올랐다. 2012년 10월(3.3%) 이후 9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일본 역시 가계의 기대인플레이션은 5.0%로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기대인플레이션은 가계나 기업 등 경제 주체들이 앞으로 물가가 얼마나 오를 것으로 보는 지를 알 수 있는 지표다. 물가 상승 기대가 강해지면 임금이나 제품 가격 인상 등 2차 파급효과가 나타나 물가 상승이 장기화될 수 있다. 따라서 물가안정목표제를 채택한 중앙은행의 목표는 기대인플레이션의 관리다.
하지만 두 나라의 대응은 전혀 다르다. 한은은 물가 상승 장기화를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빠르게 올리고 있는 반면 일본은행은 오히려 물가 상승이 고착화되길 바라며 완화적 통화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이 총재는 26일 금리 인상 결정 이후 “높아진 물가가 기대인플레이션을 자극해 더 큰 위험을 가져오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당연히 맞는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구로다 총재는 지난달 “중장기적인 기대인플레이션 상승이 중요한 만큼 지속적인 금융 완화가 필요하다”며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더 자극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두 나라 중앙은행의 정책 차이는 물가 상승을 대하는 양국 국민의 태도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도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긴축 강도를 높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 상황이 특수하다는 것이 정확하다. 30년 동안 디플레이션을 겪은 일본 국민이 가격 인상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일본은 제품 가격을 올리는 기업이 대국민 사과를 할 정도로 가격 인상에 보수적이다. 2016년 일본 제과업체인 아카기유업은 2016년 ‘가리가리군’이라는 아이스크림 가격을 60엔에서 70엔으로 10엔(약 100원) 올리면서 임직원 전체가 나와 머리를 숙여 화제를 모았다. 서울 아파트값이 계속 오를 것으로 보는 한국인의 인식만큼 물가는 오르지 않는다는 일본인의 인식이 강한 것이다.
이로 인해 기업이 제품 가격을 올릴 수 없다 보니 임금도 오르지 않는다. 낮은 임금 상승률은 인구 감소 및 고령화 현상과 함께 일본의 수요 부족과 고질적인 저물가 배경으로 꼽힌다. 일본은행이 수년 동안 대규모 자산 매입, 마이너스 금리, 수익률 곡선 관리 제도 도입 등 이른바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지속적인 완화정책을 펼쳤지만 물가 상승률이 0%대 머물렀던 이유다. 코로나19 이전 3년 동안은 평균 물가 상승률이 0.45%에 그쳤다.
일본은 수요 회복을 이끌어야 할 젊은 세대도 소비에 적극적이지 않다. 사토리 세대라고도 불리는 일본의 젊은 세대는 호황을 경험한 적 없이 태어날 때부터 경기 불황기를 보냈기 때문에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경향이 있다. 반면 한국은 젊은 세대가 소비에 가장 적극적이다. 한은의 5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20~30대 소비지출전망은 124로 40대(120), 50대(111), 60대(106), 70대(112) 등에 비해 높다. 특히 의류비, 외식비, 여행비 등 항목에서 다른 세대를 크게 앞지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일본에서 나타나는 물가 상승세는 일시적이라고 보는 분석이 우세하다. 일본의 가계 기대인플레이션은 5%이지만 기업 등은 여전히 1.5~2.0%로 보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UBS는 “일본은 지속 가능한 물가 상승 핵심 요인인 임금 인상과 기대인플레이션 상승이 제한적인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국제금융센터도 “일본 물가는 수요 증가가 수반되지 않을 소지가 크기 때문에 2023년 중에도 현 수준의 상승세가 지속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봤다.
다만 양국 모두 인플레이션이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은 물가가 오르는 가운데 이를 잡기 위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출 이자 부담이 크게 늘었다. 특히 취약계층일수록 물가 상승 타격을 크게 받는 동시에 소득 대비 이자 부담마저 가중되는 상황이다. 일본에서도 국제 유가와 식료품 가격 상승이 엥겔지수가 높은 저소득층의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져 양극화를 확대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경제학계 전반의 소식을 전하는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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