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째 경기도 부천시에서 농산물 도·소매업에 종사 중인 50대 자영업자 A씨는 지난해 가을 건물주로부터 12월 말까지 가게를 비우라는 통보를 받았다. 코로나19 이후 매출이 6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하며 매달 160만원에 가까운 월세를 감당하지 못한 탓이다. 급전이 필요했지만 파산 면책자인 그는 제도권 어디서도 월세 낼 돈을 쉽사리 빌릴 수 없어 지난해 사채에까지 손을 댔고 사실상 재기가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1일 업계에 따르면 대출을 받을 수 없는 개인 파산·회생자들이 사채 등 제3 금융권으로 내몰리는 등 경제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개인 파산·회생으로 채무 조정 절차를 거치며 큰 불은 껐지만 코로나19로 매출이 고꾸라지는 바람에 재기할 기회를 잃었기 때문이다. A씨는 “코로나 희망 대출이라도 받아서 월세를 충당하려고 했지만 파산 면책자 기록이 남아 대출을 받을 수 없었다”며 “하루 하루를 죽지 못해 살고 있다”고 토로했다. A씨는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민금융진흥원 등 여러 기관을 찾아 다녔지만 “파산 면책자에게 대출은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했다.
개인 회생자의 경우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인천시에서 16년째 도배 가게를 운영 중인 B씨는 개인 회생 기록이 남아 제도권·공공기관 어디서도 당장 필요한 돈을 빌리기가 어려웠다. B씨는 “매출이 10분의 1 토막이 나면서 월세가 밀리는 건 다반사고 가스·전기세도 잘 내지 못하고 있다. 생활 자체가 안된다"며 “정부 대출도 어렵다보니 개인 회생 변제금을 마련할 수 없어 회생 절차 폐지를 앞둔 상황”이라고 했다.
코로나19 이후 개인 파산·회생자 수가 늘었다. 법원 통계월보에 따르면 2019년 전국 법원에 접수된 개인 파산 수는 4만 5624건이었다. 코로나19가 본격 확산하기 시작한 2020년에는 5만 379건으로 약 10% 늘었고 지난해에도 4만 9063건으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월 평균 4000명을 웃도는 개인이 법원에 파산을 신청한 셈이다.
정부도 파산 면책자 등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을 위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추경안에도 최저신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서민금융진흥원의 특례보증 프로그램이 포함됐지만 대출 상환 가능성이 비교적 낮은 개인 파산·회생자들도 지원 대상에 포함될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최근 신보중앙회에서 개인 파산·회생자들도 가능한 1억원 한도의 대출 지원책을 내놓았지만 그마저도 지역별로 30명 제한을 두고 있다. 앞서 소진공도 파산 면책·개인 회생을 비롯한 최저신용자들을 위해 ‘재도전특별자금’을 지원해왔지만 파산 면책자 A씨는 기술·사업성 부족으로 지원 대상 업종에 포함되지 않아 신청을 할 수 없었다. 중기부 관계자는 “상환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사업성 평가 모델에 기반해 대출 가능 여부를 심사한다”며 “최저신용자들을 대상으로 재도전자금을 지원하고는 있지만 종사 중인 업종이 평가 모델에 적합하지 않아 심사에서 떨어지는 경우도 더러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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