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의 체외배양을 통해 항암제 반응을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미세유체칩을 국내 연구진이 개발했다. 기존 항암제에 반응하지 않는 난치암 환자에서 내성 극복의 해결책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고려대의료원은 고려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부 정석 교수와 의과대학 사경학 교수 연구팀이 김현호 하버드 의과대학 박사, 이혜원 국립암센터 비뇨의학과 교수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환자의 암세포를 암 주변의 세포와 함께 배양해 암세포에 대한 약물 저항성을 확인할 수 있는 미세유체칩을 개발했다고 7일 밝혔다.
환자 맞춤형 치료를 위해서는 암세포의 유전체 정보와 특성, 암조직 환경을 고려해 약물을 선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종양의 유전적 특성이 워낙 다양한 탓에 유전체 정보만으로는 적합한 표적항암제를 제시하기 어렵다. 쥐를 이용한 동물 실험만으로는 실제 인간의 다양한 세포와 종양 미세환경을 대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의 세포를 이용해 암세포가 자라던 원래 환경의 특성을 재현하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정석 교수팀은 미세유체 칩 기술을 이용해 암환자에게서 분리한 암세포가 그 주변의 특수한 환경에서 자라도록 만들었다. 뇌전이가 일어난 폐암을 핵심 타깃으로 개발한 점이 특징적이다. 폐암 세포가 뇌로 전이되면 뇌혈관장벽(BBB), 성상세포와 같이 뇌라는 장기의 특수성으로 인해 기존 항암제가 듣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데서 착안했다.
연구진은 우선 뇌혈관세포와 성상세포, 세포외 기질로 이루어진 미세 환경을 미세유체칩 내에서 배양해 뇌 미세환경을 구현해냈다. 이후 뇌전이 폐암 환자에게서 유래한 암세포를 함께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 암세포만 배양한 경우와 미세환경 하에서 공동 배양한 경우의 약물 반응을 유전체 시퀸싱, 분자 단위 프로파일을 이용해 확인한 결과, 뇌의 미세환경으로 인해 발생하는 폐암세포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진에 따르면 미세유체칩은 기존 세포 배양 플랫폼과 달리 세포 간 간격이 마이크로미터 수준으로 가깝다. 특히 미세 유체 채널 안에서 세포들이 분비하는 사이토카인 또는 화학인자들의 농도가 빠르게 증가, 유지되기 때문에 세포들 간 신호 전달이 밀접하게 이뤄진다. 그로 인해 암세포와 미세환경 세포들이 실제 환경과 비슷하게 동화되어 가는 과정을 재현하는 것이 가능하다.
연구진이 실제 임상에서 사용되는 항암제들을 칩에 적용한 결과, 유전체 예측과는 다른 반응성을 나타냈다. 또한 폐암세포를 뇌 미세환경에 배양했을 때 암세포의 생존력이 증가하면서 전사체 네트워크 프로파일도 변화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러한 과정이 실제 환자의 체내에서 이뤄지는 약물 저항성의 형성 원인과 유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연구진은 “기존 항암치료제가 듣지 않는 가장 주요한 원인인 암세포와 주위의 미세환경과의 상호작용을 구현할 수 있는 비임상연구 플랫폼을 개발함으로써 암세포-암주위 미세환경 에코시스템의 분자생물학적 기전 규명 및 이를 타깃으로 하는 새로운 항암치료전략 수립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권위있는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Advanced Science) 6월 3일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한국연구재단의 중견연구자 지원사업과 바이오·의료기술개발사업, 산업통상자원부의 3D생체조직칩기반 신약개발플랫폼구축사업,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보건의료기술연구개발사업 등의 지원으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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