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가 부각되며 엔·달러 환율이 20여 년 만에 133엔을 돌파(엔화 가치 하락)했다. ‘엔저’가 내년 여름까지 적어도 1년은 더 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와 일본과 경쟁 관계에 있는 우리나라 수출에도 악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7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날 엔·달러 환율은 장중 달러당 133.01엔에 거래됐다. 이는 2002년 4월 이후 20년 2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스즈키 슌이치 재무상이 이날 “환율 동향과 일본 경제에 대한 영향을 긴장감을 갖고 주시하고 있다”고 구두 개입에 나섰지만 엔저를 막지는 못했다.
엔저 행보는 미국과 일본의 통화정책 디커플링(탈동조화)의 영향이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돈줄을 강하게 조일 것으로 보이는 반면 일본은 중앙은행이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이어가고 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는 전날 “현 상황에서 긴축적 통화정책은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일본은 물가 상승률이 2%대로 미국(8%대)에 비해 낮고 고용시장도 좋지 않아 금리를 올릴 때가 아니라는 게 구로다 총재의 시각이다. 이에 이날 미 10년물 국채 금리는 3%대에 거래됐지만 일본은 0%대 초반에 머물러 미일 금리 차이가 부각, 투자자들이 엔화를 투매하고 달러를 사들였다. 블룸버그는 올해 엔화가 주요10개국(G10) 통화 중 가장 큰 약세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국제 유가 상승도 엔저에 불을 붙이고 있다. 일본은 석유를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로 현지 석유 수입 업자들은 유가가 오르면 그만큼 늘어나는 수입 대금을 지불하기 위해 엔화 대신 달러를 확보하려 들 수밖에 없다. 이는 외환시장에서 달러의 몸값을 올리는 요인이 된다.
시장에서는 엔화 약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가이타메닷컴의 간다 다쿠야 매니저는 “엔·달러 환율 132~133엔 선은 지나가는 길목에 불과하다”며 “다음 기술적 저지선은 135.15엔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35.15엔은 2002년 장중 최고점이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엔저 추세를 돌리려면 BOJ가 통화정책 방향을 재검토하거나 원유 수입을 줄일 수 있도록 원전을 재가동해야 한다”며 “또 엔화 수요를 높일 수 있는 해외 관광객 전면 허용 등의 조치가 필요한데 정치적 측면에서 쉬운 결정이 아니고 당장 실현할 가능성도 낮다”고 지적했다.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대장성 재무관은 최근 아사히와의 인터뷰에서 “구로다 총재의 임기(내년 4월까지)가 끝난 후 내년 여름에서 연말 사이에나 BOJ가 금리 인상을 검토해 엔고로 돌아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엔저가 최소 1년은 이어진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우리 수출 경쟁력 약화 우려도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 보고서에서 “국내 제품의 브랜드, 품질 경쟁력 등이 높아지며 과거보다 엔저의 영향력이 줄기는 했지만 자동차, 기계, 전기·전자 등 일부 주력 품목은 여전히 일본과 경합도가 높다”고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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