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 이후 우리나라 경제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은 건 수출이 든든히 버텨줬기 때문이다. 반면 민간소비는 방역을 완화할 때마다 코로나19가 재확산해 꺾이기를 반복하면서 더딘 회복세를 보였다. 올해 1분기 기준으로 민간소비는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4분기 대비 99% 수준에 불과해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미국의 긴축과 중국 경기 둔화, 전쟁 등 각종 대외 변수로 수출이 점차 둔화될 수밖에 없어 앞으로는 민간소비가 경제를 견인해야 한다. 마침 주요 방역 조치 대부분 해제된 만큼 소비가 살아날 수 있는 환경은 조성됐다. 하지만 그사이 물가가 너무 올라버렸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려 해도 밥값이 너무 비싸졌고 여행을 가려고 해도 항공권 가격이 깜짝 놀랄 정도로 올라버렸다. 고물가·고금리가 소비를 어느 정도 제약하는지에 따라 올해 성장률이 좌우될 것이란 분석이다.
한은이 9일 발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최근 방역조치 완화 이후 소비 회복의 특징 및 평가’를 주요 내용으로 다뤘다.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이창용 총재가 올해 성장과 관련해 “수출의 성장 기여도가 점차 낮아지고 있다”며 “반대로 국내 요인을 보면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로 소비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는 등 상방 요인이 있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보완한 셈이다.
한은 분석 결과 최근 민간소비는 물가 상승과 금리 상승에도 불구하고 빠른 회복 흐름을 보이고 있다. 먼저 비대면 중심의 생활방식이 정상화하면서 야간 이동량이 많이 늘어나는 등 소비 활력이 살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 강남구 7개소의 4월 이동량을 보면 오후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이동량이 올해 3월 대비 52.6% 증가했다. 그동안 가장 더디게 회복했던 예술·스포츠·여가 수요가 가장 빠르게 회복 중이다. 공연장이나 스포츠 경기장을 찾는 발길이 늘었고 예식장도 다시 잡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외 출입국 방역 완화로 해외여행 수요가 회복될 조짐을 보인다. 백신 접종 완료자에 대한 국내 입국 시 자가격리가 면제되고 정부의 해외여행 자제 권고도 완화되자 해외여행 관심이 크게 늘었다. 올해 4월 네이버 검색어 트렌드 기준으로 ‘해외여행’ 검색량은 코로나19 이전 대비 190% 늘었고, ‘항공권’ 검색량은 72% 수준으로 나타났다. 주요 관광지를 중심으로 출국자 수도 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우리나라 국제선 항공수요가 이번 여름 휴가철에 2019년의 40% 수준까지 회복해 올해 말 80%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물가다. 해외여행부터 살펴보면 원·달러 환율이 너무 오른 데다 유류할증료도 크게 올랐다. 대한항공의 6월 국제선 유류할증료는 편도 기준으로 3만 7700~27만 9500원으로 올해 2월 최고액 기준 7만 9200원 대비 20만 원 이상 올랐다. 소비자물가지수의 4월 국제항공료는 전년 동월 대비 16.2% 올랐다. 매달 유류할증료가 오르다 보니 오늘 항공권이 가장 싸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물가 상승은 항공권뿐 아니라 거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4%로 13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데 공업제품(8.3%)은 물론이고 외식 등 개인 서비스(5.1%) 등이 주로 올랐다. 특히 5월 중 돼지고기 가격 상승률은 20.7%로 크게 높아졌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사료용 곡물 가격이 인상된 가운데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수요까지 늘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전기료(4월)와 도시가스요금(4·5월) 인상도 물가 상방 요인으로 작용했다. 농산물 정도를 제외하면 오르지 않은 품목이 없을 정도다.
가계도 물가 상승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한은이 조사한 5월 소비자심리지수는 102.6으로 1.2포인트 떨어지면서 3개월 만에 하락 전환했다. 물가를 잡기 위해 한은이 연내 기준금리를 서너 차례 더 인상해 2.50~2.75%까지 올린다면 가계의 실질 소비 여력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가계의 실질 구매력 약화로 소비 회복이 지연되거나 침체 국면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을 내놓기도 했다.
한은은 최근 민간소비는 물가 상승세 확대와 금리 상승에도 불구하고 빠른 회복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단체모임이나 해외여행 등 그동안 억눌렸던 부문을 중심으로 펜트업 효과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19 이후 축적된 가계저축과 2차 추가경정예산안도 소비에 도움을 주고 있다. 다만 한은은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 환율 및 금리 상승 등에 따른 가계부담 증가와 여름 및 겨울철 감염병 재확산은 소비 회복을 제약하는 요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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