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올 1분기 보유한 ‘차입금 및 사채(만기 이자액 포함)’ 규모가 역대 최고치인 103조 8606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해 말 관련 규모가 91조 9504억 원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불과 석 달 만에 약 12조 원이나 늘어난 셈입니다. 올 하반기부터 전기요금을 상반기 대비 2배 가량 높여야 연가 적자 경영을 겨우 면할수 있는 수준이지만, 요금인상 카드를 꺼내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이 ‘빚으로 빚을 막는’ 한전의 차입 경영도 관련 법에 따라 조만간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는 점입니다. 재정 투입이나 관련 법 개정이 없으면 한전이 ‘자본잠식’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됩니다.
11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한전이 올해 신규 발행한 회사채는 14조 5000억 원에 달합니다. 전력 구입비가 급등한 반면 전기요금은 사실상 동결되면서 관련 손실을 회사채로 메운 탓입니다. 이 같은 발행 규모는 지난해 연간 발행액(10조 4300억 원)을 이미 뛰어넘는 수준입니다. 연내 30조 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대규모 추가 사채 발행이 불가피할 정도로 한전을 둘러싼 상황은 악화 일로입니다. 올여름 역대급 폭염까지 예고돼 전력 수요도 폭증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한전의 손실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는 계통한계가격(SMP) 조정 및 올 3분기 실적 연료비를 1㎾h당 3원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한전의 재정 악화를 막기에는 역부족입니다. 한전 자체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기요금 1% 인상 시 분기당 1537억 원가량의 이익이 늘어납니다. 당장 다음 달부터 전기요금을 100%가량 인상해야 올해 영업손실을 면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정부는 올해 연료비 인상분을 내년 전기요금에 반영할 경우 한전의 재무제표가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문제는 한전이 올해를 넘기기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관련 법에 따라 회사채 발행이 제한돼 자본잠식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전력공사법 16조에 따르면 한전의 회사채 발행액 한도는 ‘자본금과 적립금을 합한 금액의 2배 이하’로 규정돼 있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한전의 자본금과 적립금을 합친 금액은 총 45조 8928억 원으로, 당기순손실만큼 적립금 규모도 줄어든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말에는 회사채 발행이 제한됩니다.
여기에 한전의 전력계통망 투자 부담은 이전 정부의 ‘묻지마 신재생’ 보급 정책으로 급증할 전망입니다. 태양광 등 신재생 설비는 소규모 형태로 전국에 퍼져 있어 해당 설비를 일일이 전력 계통망에 연결하기 위해서는 상당 규모의 예산이 필요합니다. 연료비 급등으로 한전의 재정이 역대 최악을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투자 관련 부담으로 한전의 재무 상황 개선이 요원하다는 우려마저 나옵니다.
실제 한전의 배전 설비 구축 관련 예산은 2018년 2조 8808억 원에서 올해 3조 6126억 원으로 20% 이상 증가했습니다. 한전이 배전망 구축에 투입해야 하는 예산만 4년 새 8000억 원가량 늘어난 셈입니다.
이 같은 예산 급증은 신재생 설비 보급 과속 정책과 관련이 깊습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2019년 초 1만 3579㎿ 수준이던 신재생 설비는 이달 2만 6096㎿를 기록해 3년 반 만에 2배가량 증가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대규모 발전소에 적용되는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비율을 꾸준히 상향하는 방식으로 신재생 설비를 빠르게 늘렸습니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에 따른 원자력발전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신재생 설비를 늘렸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합니다.
반면 석탄발전 등 대형 발전소의 전력 송출과 관련된 송·변전 관련 예산은 2018년 2조 9377억 원에서 올해 2조 7943억 원으로 줄었습니다. 고압선로 설치와 관련한 지역사회의 반발 등으로 송·변전망 구축 작업은 지지부진한 상황입니다. 송·변전망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을 경우 자칫 ‘블랙아웃(대정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한전의 전력망 투자 부담은 이전 정부의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에 따라 더욱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전력 계통 혁신 방안’에 따르면 2030년까지 전력망 보강에 총 78조 원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애초 정부는 2030년까지 전력망 보강을 위해 47조 500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예측했지만 NDC 상향으로 관련 부담이 30조 원 이상 늘었습니다.
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새 정부가 출범하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2008년처럼 한전에 정부 재정을 투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한전공사법 개정을 통해 한전의 숨통을 틔워주고 추후 전기요금 인상 등으로 한전의 손실을 줄이는 방안이 가장 유력한 카드가 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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