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공회의소가 법인세율 인하, 연구개발(R&D) 세액공제율 상향 등의 내용을 담은 조세제도 개선 과제를 정부와 국회에 공식 건의했다. 기업들이 최근 엄습하는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삼각 파도를 넘기 위해서는 조세 부담을 반드시 줄여 줘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대한상의는 13일 ‘2022년 조세제도 개선과제 건의문’을 발표하고 “글로벌 산업지형이 급변하는 와중에 원자재 가격급등과 금리 인상 등 불안요인이 겹치면서 기업들의 경영 여건에 큰 어려움이 닥칠 것으로 우려한다”며 “글로벌 추세에 맞지 않고 외국보다 불리한 세제를 개선하고 기업하기 좋은 조세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의는 매년 세법 개정에 앞서 기업들의 의견을 수렴해 정부와 국회에 건의문을 올린다. 올해 건의문에는 △글로벌 경쟁환경 조성 △미래투자 인센티브 강화 △해외진출·인수합병(M&A) 지원 등을 위한 과제를 담았다.
우선 글로벌 경쟁환경 조성 항목과 관련해서는 법인세율 인하와 투자·상생협력촉진세제 폐지를 요구했다. 상의에 따르면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25%)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21.5%)보다 높다. 과표구간이 4개 이상인 국가도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여기에 투자·상생협력촉진세제는 정책 효과 없이 추가적인 세금 부담만 늘린 꼴이 됐다는 게 상의 측 지적이었다. 투자·상생협력촉진세제는 투자, 임금증가, 상생협력 분야로 지출하지 않은 일정률의 당기소득에 대해 법인세 20%를 추가 과세하는 세제다. 2015년 기업소득환류세제로 한시 도입한 것을 2018년 투자·상생협력촉진세제로 이름만 바꿨고 2020년에는 또 다시 연장했다.
투자·상생협력촉진세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오직 한국뿐이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사내유보금 과세 제도를 두고 있지만 이는 개인 주주의 배당소득세 탈세를 방지하기 위한 방편이다. 한국의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다른 글로벌 경쟁자와 달리 높은 법인세에 투자·상생협력촉진세까지 이중으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상의는 “첨단산업에 강점이 있는 우리 기업들이 격차를 유지·확대하기 위해서는 투자를 저해하는 기업세제를 개선해야 한다”며 “법인세율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추고 유례를 찾기 힘든 투자·상생협력촉진세제는 폐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래투자 인센티브 강화 항목은 R&D·시설투자 세액공제율 상향과 최저한세 폐지에 초점을 맞췄다. 일반 R&D에 대한 세제 지원은 2013년 이후 지속적으로 축소했다는 게 상의 측 지적이었다. 일반 R&D 세액공제율은 대기업 기준 2013년 최대 6%에서 현재 최대 2%로 10년 동안 3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시설투자 세액공제율도 줄었다. 기존에는 시설 종류를 9개로 구분했고 대기업 기준 세액공제율도 1~10%로 다양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통합투자세액공제로 합치면서 세액공제가 대기업 1%, 중견기업 3%, 중소기업 10%로 바뀌었다. 그 결과 근로자복지증진시설, 환경보전시설 등의 경우 대기업 세액공제율이 2%포인트 축소했다.
상의는 최근 첨단전략산업 중심으로 이뤄진 투자세제 지원도 최저한세 때문에 제 효과를 내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최저한세는 기업이 조세감면을 받더라도 최저한의 세액(7~17%)보다 모자라면 미달분에 대한 감면을 배제하고 최소한의 세금을 부담하도록 하는 제도다. OECD 국가 중 최저한세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 캐나다, 헝가리, 룩셈부르크 등 4개국에 불과하다. 미국의 경우 과거 최저한세를 두고 있었으나 투자를 위축시키고 법인세제의 복잡성을 가중시킨다는 지적을 받아 2017년에 폐지했다.
상의는 “최근 국내 선도기업들이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했는데 R&D 세액공제율을 대기업은 2%에서 5%로, 중견기업은 8%에서 10%로 상향하고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대기업은 1%에서 3%로, 중견기업은 3%에서 5%로 확대해야 한다”며 “최저한세는 전면 폐지하거나 적어도 초기 투자비용 부담이 큰 국가전략, 신성장·원천기술 분야 만큼은 최저한세 적용을 면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법인 배당소득 전면 비과세, 국내법인 배당소득 비과세 요건 완화도 건의문에 포함했다. 상의는 해외 자회사가 우리나라보다 법인세율이 낮은 국가에 있는 경우 그 차액만큼을 국내에 추가로 납부하는 부담을 문제로 지목했다.
국내 법인 간 이중과세도 개선 과제로 꼽았다. 우리나라는 자회사 지분율이 100%일 경우에 한해서만 전부 비과세하고 100%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에는 30%나 50%만 과세하지 않고 있다. 반면 미국은 자회사 지분율 80% 이상, 일본은 30% 이상이면 과세하지 않는다. 영국은 지분율과 관계없이 전액 비과세로 처리한다.
상의는 “이중과세 문제를 해소한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불완전한 제도를 택해 국내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다”며 “해외배당소득의 경우 OECD 대부분 국가들이 운영중인 ‘원천지주의’로 전환해 비과세하고 국내 배당소득은 자회사 지분율고하 관계없이 전액 비과세하거나 면세율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김현수 대한상의 경제정책실장은 “새 정부가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정책’을 국정목표로 밝히고 있어 기업들의 기대감이 크다”면서도 “기존 조세 제도가 기업의 투자를 옥죄고 있다. 하반기 세법개정 작업에 기업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잠재 성장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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