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인상)’을 밟은 후 반등했던 한국 증시가 하루 만에 다시 추락했다.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 발표 하루 만에 경기 침체 우려가 증폭되면서 뉴욕 증시가 일제히 폭락한 여파였다.
1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전일 대비 10.48포인트(0.43%) 내린 2440.93에 마감했다. 지수는 1.70% 내린 2409.72로 개장해 장 초반 한때 2% 넘게 떨어진 2396.47까지 하락하며 2400선이 붕괴됐다. 그러나 이후 개인과 기관의 매수세가 살아나며 낙폭을 줄였다.
이날 코스피의 약세는 외국인이 주도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6893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기관과 개인은 각각 3290억 원, 2950억 원을 순매수했지만 지수 하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장주 삼성전자는 1.81% 하락한 5만 9800원을 기록하면서 종가 기준으로 2020년 11월 4일 5만 8500원을 기록한 후 약 1년 7개월 만에 처음 5만 원대로 내려갔다. 이 밖에 네이버·카카오 등 시가총액 상위 기업들도 52주 신저가를 새로 썼다.
뉴욕 증시가 지난밤 경기 침체 우려에 급락한 영향을 고스란히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16일(현지 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전날보다 741.46포인트(2.42%) 떨어진 2만 9927.07에 마감해 지난해 1월 이후 처음으로 3만 선이 무너졌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3.25% 내린 3666.77, 나스닥은 4.08% 급락한 1만 646.10에 거래를 마쳤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간밤에 미국 증시도 급락하며 전 거래일의 상승분을 모조리 반납했다”며 “6월 FOMC 결과를 재해석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한 연구원은 “FOMC 결과 발표 당일인 16일에는 주가 선반영 인식, 악재의 기정사실화 혹은 재료 소멸의 인식이 시장의 중론이었다”면서도 “다음 날인 17일에는 인플레이션이 쉽게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속에 추가 자이언트스텝과 같은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경제가 버틸 수 있겠느냐는 불안감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국 증시의 낙폭은 주요국 증시 가운데서도 두드러진다. 코스피의 코로나19 이후 고점 대비 증시 하락률은 -35.41%로 가장 높다. 미국 나스닥이 -33.70%로 위를 기록했으며 홍콩 증시가 -32.94%로 뒤를 이었다. 코스닥도 -24.65%를 기록했다. 반면 주변국인 중국과 일본은 -11.57%, -13.82%로 비교적 선방했다.
월가에서 기술적 분석으로 이름난 케이티 스톡턴 페어리드 창업자는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지수(VIX)를 거론하며 아직 시장에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VIX를 보면 아직 투자자들의 항복 신호가 나오지 않았으며 VIX가 38은 돼야 그렇게 될 것”이라며 “VIX가 38이 되면 S&P500이 3500 또는 그 이하인 3200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증시에서의 항복 신호는 투자자들이 갖고 있는 주식을 투매하는 시점으로, 시장이 바닥에 근접했다는 뜻이다. 이날 VIX가 32.95로 마감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S&P500은 앞으로도 추가적으로 12%가량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제조업과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의 구조적 특성상 인플레이션과 경기 둔화가 심화하면 투자 매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특히 금리 인상 기조로 위험자산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지면서 국내 증시에 대한 외국인들의 투자 선호도가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선임연구위원은 “금리 인상 폭이 확대되고 원·달러 환율이 그만큼 올라갈 수 있는 상방 압력이 높아진다는 생각에 외국인들의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며 “그간 한국 시장은 유동성이 많았는데 이머징마켓으로서의 매력이 떨어지면서 다른 증시보다 낙폭이 더 큰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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