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의 지원사격에 힘입은 코스피가 21일 반등에 성공했지만 외국인의 투매가 이어지며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날 외국인은 장이 열리고 30분이 채 흐르기도 전에 코스피와 코스닥 양 시장에서 1700억 원의 매물 폭탄을 쏟아냈다. 장 마감까지 총 2278억 원 어치 주식을 팔아치웠다. 장 초반 외국인의 매도 공세는 전일 증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올 들어 외국인이 코스피 시장에서 순매도한 금액은 15조 원을 넘는다. 이 중 3분의 1가량을 이달에 팔아치웠다. 외국인의 매도가 거세지면서 코스피 내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13년 만에 최저치(30.85%)를 기록했다. 전 세계에서 증시 급락은 공통된 현상이기는 하지만 한국 증시는 외국인들의 투매로 낙폭이 더 크다. 심상치 않은 외국인들의 한국 증시 이탈을 두고 증권가에서 나오는 여러 해석이 나온다.
①한미 금리 역전에 ‘캐리트레이드’ 펀드 청산 행렬=외국인들의 자금 유출 압력을 키우는 요인으로는 한국과 미국 간 기준금리 역전이 꼽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7월에도 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면 현재 연 1.5~1.75%인 미국의 기준금리가 2.25%~2.5%로 올라간다. 다음 달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을 밟는다 하더라도 한국의 기준금리는 2.25%에 불과해 양국의 금리 역전이 불가피하다. 미국이 연말까지 3.25~3.5%선으로 금리를 끌어 올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한국이 아무리 따라 올린다 하더라도 역전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 금리가 역전되면 외국인투자가 입장에서는 금리가 낮은 엔화나 달러를 국내에 들여와 금리 차익을 내는 캐리트레이딩(금리 차를 이용한 투자)을 할 요인이 사라진다. 캐리트레이드는 금리가 낮은 국가에서 자금을 빌려 고금리 국가의 자산에 투자해 차익을 노리는 투자 전략이다. 금리 역전을 앞두고 국내에 투자하는 대형 헤지펀드들이 로스컷 또는 청산에 나서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에 힘이 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연준이 예상보다 빨리 기준금리를 인상하니 외국인들의 유동성이 상대적으로 더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면서 “금리와 환율 효과를 생각하면 미국에서 달러로 자금을 운용하는 게 유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②‘글로벌 경기’ 하락에 베팅…‘바로미터’ 한국·대만 동시 매도=강력한 긴축 초입에 들어선 글로벌 경제가 향후 침체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에 대해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 경제는 반도체·자동차 등 수출 제조업 중심이다 보니 글로벌 경기에 가장 민감한 구조를 갖고 있다.
최근 외국인 매도세가 반도체 업종에 집중된 배경이다. 삼성전자는 전일 5만 8700원으로 내려앉으며 2020년 11월 이후 1년 7개월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이달 들어서만 여섯 번째 52주 최저가를 경신했다. 외국인이 한국 반도체 업황이 악화할 것이라는 전망에 ‘베팅’하고 있는 셈이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올해 3분기 D램 가격이 직전 분기 대비 최대 8%, 낸드플래시 가격은 최대 5%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경기 침체로 제품 재고량은 늘고 있는데 모바일 및 PC 수요가 부진하면서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반도체 의존도가 높은 대만 증시가 최근 취약한 모습을 보인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전일 대만 자취엔지수는 2021년 5월 이후 처음으로 1만 5500선을 밑돌았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경기 침체에 대한 경계심에 반도체 업황 우려까지 겹치면서 국내 증시가 다른 신흥국에 비해 낙폭이 컸다”면서 “물가 상승이 긴축을 이끌었기 때문에 실제 물가 상승세가 꺾이는 것이 수치로 확인되기 전까지는 위축된 시장 흐름을 되살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③살아나는 중국 증시로 자금 재배치=국내 증시가 맥을 못 추는 데는 옆 나라 중국의 영향도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에는 중국 증시가 좋으면 한국 증시도 후광효과를 봤지만 글로벌 유동성이 마르는 상황에서 그나마 있는 자금을 한국에서 빼내 중국 쪽으로 돌리려는 투자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한 외국계 증권사의 브로커는 “그동안 바닥을 기었던 중국 증시가 플랫폼 규제 완화, 대출우대금리(LPR) 인하, 승용차 취득세 감면 등 부양책에 힘입어 상승하고 있어 한국 주식 비중을 줄이고 중국 비중을 늘리는 식으로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고 말했다. 이재선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며 다른 나라도 따라서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데 중국은 오히려 경기 부양을 위해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고용지표 등 경기지표도 선방하며 외국인 자금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외국인의 본격적인 복귀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승훈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외국인이 글로벌 자산 배분 차원에서 한국의 비중을 줄이고 있어 3분기까지는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7월 물가가 고점을 찍었다는 시그널과 환율 안정이 이뤄져야 외국인이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경기 전망 등이 개선돼야 한다”며 “실물경제가 나아지고 있다는 신호를 잘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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