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계·기업 등 민간 부문의 부채 증가 속도가 2분기 연속 조사 대상 43개국 중 세 번째로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결제은행(BIS)은 한국의 민간 부채 증가 속도에 7분기 연속 경고를 날렸다. 금리 인상이 계속됨에 따라 취약차주·한계기업들이 쏟아져 부실 규모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21일 BIS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우리나라 신용갭(Credit-to-GDP gap)은 17.7%로 집계됐다. 조사 대상 43개국 중 일본(25.6%), 태국(21.4%)에 이어 세 번째다. 지난해 3분기(18.9%)보다 1.2%포인트 줄어든 수준이지만 조사 대상 중 세 번째로 높은 것은 2분기 연속 유지됐다. 신용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를 합한 민간부채의 비율로 장기 추세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2%포인트 미만이면 ‘보통’, 2~10%포인트면 ‘주의’, 10%포인트를 넘어가면 ‘경보’ 단계로 분류된다. 민간부채가 늘어나는 속도가 빠를수록 신용갭이 확대되는데 신용갭이 과도하게 높아질 경우 경기 충격 금융위기로 전이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코로나19 펜데믹 시기였던 2020년 말만 해도 일본·태국뿐만 아니라 캐나다·프랑스·홍콩·노르웨이·사우디아라비아·싱가포르의 신용갭이 우리나라보다 높았다. 이들 국가가 2년간 부채 관리를 통해 신용갭을 줄이는 동안 우리나라는 수치상으로 현상 유지에 그쳤다. 우리나라의 신용갭은 2020년 2분기 때 처음 10%를 넘어선 데 이어 지난해 4분기 17.7%까지 계속 10%대를 초과했다.
세부적으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4분기 기준 106.6%로 한국보다 비율이 높은 국가는 스위스(129.9%), 호주(119%), 캐나다(107.5%) 뿐이다. 전 분기보다 0.1%포인트 줄었으나 1년 전보다는 3.2%포인트 높았다.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114.5%로 전 분기보다 0.8%포인트, 일 년 전보다는 4.2%포인트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과도한 부채가 금리 인상, 인플레이션 우려 등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며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6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28년 만에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리며 자이언트스텝을 밟은 가운데 한국 역시 금리 인상을 계속해 연말 기준금리가 2.75~3.0%로 전망된다. 이미 5대 시중은행에서 취급하는 고정형 주택담보대출의 상단 금리가 13년 만에 연 7%를 넘어섰다. 금리 인상이 계속될 경우 이자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차주들의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아직 금리 인상이 3분의 1도 오지 않은 상황으로 주담대 금리가 연 10%대를 찍으면 한계 차주가 본격적으로 발생할 것”이라며 “집을 산 차주보다 생활비 목적으로 주담대를 받은 차주, 대기업보다 은행 차입금으로 생존하는 기업들의 대출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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