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일본에서 한 한국인의 소식이 날아들어 화제가 됐다. 맨몸으로 일본에 건너가 평사원 컨설턴트로 시작해 메이저 컨설팅펌인 딜로이트컨설팅재팬 최고경영자(CEO)까지 오른 한국인의 이야기였다. 그는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딜로이트컨설팅 대표를 맡았다. 올 3월에는 아예 업종을 완전히 바꿔 제약 회사 CEO로 변신했다. 휴온스(243070)그룹 지주회사인 휴온스글로벌(084110) 대표이자 제약회사 휴온스의 각자대표인 송수영(59) 사장이 주인공이다.
제약 산업은 통상의 제조업과 달리 전문성과 영업력이 중시돼 연구직이나 영업직 출신이 CEO를 맡는 게 일반적이다. 컨설턴트 출신이 한국 제약 회사 CEO를 맡은 것은 송 대표가 처음이다. 업계에서도 휴온스의 인사를 ‘실험’으로 보는 이유다. 하지만 송 대표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는 “그룹 매출 1조 원을 달성하고 이후의 대도약까지 이뤄내겠으니 꼭 지켜봐달라”고 힘줘 말했다. 휴온스그룹은 2016년 매출 1600억 원대에서 2020년 5000억 원을 돌파하고 2021년에는 5799억 원을 기록할 정도로 최근 급성장하고 있다. 송 대표는 21일 경기도 판교 사옥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급성장한 만큼 회사가 매니지먼트 능력을 갖춰야 할 때”라며 “고도의 경영 능력을 구축해 1조 원 목표 달성과 대도약을 성취하겠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컨설턴트 출신답게 인터뷰 내내 회사가 ‘경영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휴온스그룹 9개사는 최근 모두 외형적으로 급성장했어요. 급성장한 기업일수록 내실을 다지지 않으면 어느 순간 급강하하게 됩니다. 알짜배기 기업, 혁신 기업이 되려면 경영 혁신을 통해 고도의 매니지먼트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필수입니다. 뛰어난 경영 능력을 가진 회사만이 예상치 못했던 위기가 왔을 때 그걸 버텨내거나 이겨내거든요.”
휴온스그룹은 원래 오너 경영인 체제로 운영됐다. 휴온스의 전신인 광명제약 창업주 고(故) 윤명용 회장의 아들 윤성태 부회장이 이끌었다. 그런데 윤 부회장이 올해 회장이 되며 9개사 전부를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새로운 전문경영인 체제의 첫 선장으로 선정된 이가 바로 송 대표다. 윤 회장 역시 자신이 크게 키운 휴온스그룹에 고도의 경영 능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수많은 글로벌 선두 기업을 컨설팅한 송 대표를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 대표는 한양대학교 산업공학과를 나와 1989년부터 1997년까지 삼성전자에 몸 담았다. 지역전문가로 선발돼 일본에 1년간 다녀온 것이 일본어 공부를 하게 된 계기가 됐다.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면서 ‘일본 사람처럼 일본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사람보다 더 잘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일본에서 돌아와서는 경영혁신 담당 부서에서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즘 말로 ‘현타’가 왔다. 과중한 업무와 사람을 상대하는 데 스스로를 소진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나머지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가 부친의 사업을 도우며 1년 반 동안 고뇌의 시간을 가졌다. 사람 상대하지 않고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찾고 또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역전문가 경험을 쌓았던 일본에서 다시 시작하자고 결심하고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일본은 외국인이 직장 생활을 하기에 어려운 면이 많아요. 제가 어려웠던 얘기를 하면 밤을 새워야 합니다. 저는 일본에서 이를테면 이주 노동자였고 당시 일본 기업계 주류 사회에 한국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요.” 그는 외국인로서 일본어를 ‘핸디캡’이 아닌 ‘경쟁력’으로 삼았다. 외국인이 일본 사람보다 일본어를 더 잘하면 현지인들이 그 사람을 다르게 볼 것으로 생각했다. 일본어를 파고 또 팠다. “중요한 것은 발음이 좋고 이런 게 아니에요. 저는 일본어를 ‘절묘하게’ 사용합니다. ‘송 상은 프레젠테이션이나 비즈니스 대화에서 어떻게 그렇게 절묘한 표현을 사용하냐’는 질문도 현지인들로부터 많이 받았어요. 일본 사람보다 일본어를 더 잘하자고 발상을 전환해 공부하다 보니 되더군요. 일본 컨실팅펌 대표로 있을 때 한국인 컨설턴트를 많이 뽑았는데 그들에게도 그랬어요. 언어를 핸디캡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송 대표는 일본 컨설팅 업계에서 ‘신화’를 썼다. 파나소닉·도시바·소니·닛산·도요타 등 다양한 기업들을 컨설팅하면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결국 미국 명문대 출신이 즐비한 컨설팅 업계에서 메이저 컨설팅펌 CEO까지 올랐다. 다소 생소한 제약사의 CEO를 맡은 지금은 인생의 좌우명인 ‘초심 잃지 않기’를 더욱 되새기려 한다. 그는 “휴온스에서 다시 시작한 만큼 과거 30대 초반 처자식을 데리고 일본에서 다시 시작했을 때 그 막막했던 시절에 다졌던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한다”며 “그동안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휴온스를 최고의 위치에 올려놓겠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송 대표가 구상한 휴온스 발전 전략의 중심은 경영 능력이다. 그가 그토록 강조하는 경영 능력은 도대체 뭘까. 송 대표는 “기업 경쟁력은 우선 제품력이 중요한데 제품이 좋아도 경쟁사가 많으면 매니지먼트 능력이 기업 경쟁력을 좌우한다"며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예를 들었다. “삼성과 LG는 같은 제품을 출시하더라도 더 안정적으로 생산해 더 신속하게 시장에 투입하는 능력을 구축한 회사입니다. 경영 능력을 고도화한 대표적 사례지요."
선진 기업의 또 다른 능력은 선진적 조직 문화라는 게 그의 신념이다. 휴온스에서도 회사만이 아니라 구성원 각자가 성장한다는 것을 느끼고 협업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를 위해 인사 평가 등 모든 것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된다는 것을 구성원들이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3월 취임 이후 15개 경영 혁신 과제별 태스크포스팀(TFT)을 만들었어요. 소통과 협업을 통해 부서와 부문을 뛰어넘는 성과를 내기 위한 경영 혁신을 구성원 스스로에게 이끌어내려 합니다. 아울러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역시 강화할 생각입니다."
최근 급성장한 휴온스그룹의 전문경영인으로서 송 대표가 내놓은 비전은 ‘1조 원 매출’과 ‘대도약’이다. 특히 글로벌 시장, 그 중에서도 일본에 포커스를 맞췄다. 그가 20년 이상 일본에서 일한 일본통이어서가 아니다. 일본은 제약·바이오와 헬스케어·건강기능식품 시장 등이 크고 질적으로도 앞서 있다. 실제로 휴온스는 지난달 오사카에 현지법인 휴온스재팬을 설립했다. 일본의 거대 시장을 공략함과 동시에 배울 것은 배워온다는 전략이다. “일본은 의약품 세계 4위, 건기식 2위 시장이에요. 보다 중요한 것은 일본은 고령화 사회이고 건강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대단히 높다는 점입니다. 질적인 측면에서도 일본 제약·바이오 사업의 수준은 세계 최고입니다. 중국 관광객이 일본에 오면 가전제품을 사갔다는 것은 옛날 얘기입니다. 단체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약국 앞에 길게 서 있고 중국인들이 약국 선반을 털어오다시피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을 싹쓸이 쇼핑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국소주사제를 중심으로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필러·보툴리눔톡신 등의 수출도 확대할 계획이다. 특히 보툴리눔톡신(수출명 휴톡스)은 미국·중국·유럽 빅3 시장에서 파트너십이 완성된 만큼 2024년부터 순차적으로 진출돼 회사의 대도약을 이끌 주역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송 대표는 휴온스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전문의약품 중심 회사이다 보니 일반인들은 휴온스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사명에 ‘제약’ ‘약품’ 등이 들어 있지 않아 휴온스는 들어봤어도 제약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휴온스가 선택한 것은 스포츠 마케팅이다. 휴온스는 현재 골프단과 당구단을 운영하고 있고 프로야구 키움히어로즈를 후원한다. 송 대표는 스포츠 마케팅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그는 “스포츠 마케팅은 브랜드를 알리는 수단이라는 의미를 넘어 휴온스가 지향하는 ‘건강한 삶’ ‘건강한 사회’라는 가치와 맞닿아 있다"면서 “올해는 종목을 늘려 미래 세대와의 접점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휴온스에서 최종적으로 이루려는 목표는 ‘미래 대응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다. 송 대표는 “예측할 수 없는 외부 변화에 대한 대응력은 뛰어난 경영 능력, 조직 문화, 인재 육성 문화에서 나온다"면서 “휴온스를 위기가 닥쳤을 때 뛰어난 경영 능력으로 이겨내는 제약 업계 최고의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성장 잠재력을 극대화해 퀀텀점프를 이뤄내는 한편 더 큰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대응력을 갖추겠다”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