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년 간 이어진 옛 소련의 점령으로 반(反)러 정서가 높은 발트 국가들에서 러시아의 위협에 대비한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에스토니아 총리는 러시아의 침공 시 자국이 "지도에서 지워질 것"이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군대 병력 증강을 호소하고 나섰다. 러시아 역외 영토에 제재를 가한 리투아니아는 "러시아의 보복에 대비할 준비가 돼 있다"며 결연한 자세를 내보였다.
에스토니아 총리 “나토 방어계획,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우크라이나 봐라”
2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카야 칼리스 에스토니아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나토의 방위계획상 발트 3국은 (러시아의 침공) 180일 후에 탈환하도록 되어 있다"며 "우크라이나와 발트3국간 크기를 비교했을 때 180일이라는 기간은 우리 문화와 국가를 완전히 파괴하기에 충분하다"고 밝혔다. 앞서 3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의 침공 이후 100일간 우크라이나 면적 12만 5000㎢가 점령당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를 합친 발트 3국의 면적은 17만 5015㎢다.
특히 칼리스 총리는 나토가 인계철선(tripwire) 목적으로 발트 3국에 각각 1000명의 병력만을 배치한 것이 "나토 회원국을 잃은 후에야 되찾겠다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인계철선은 전쟁 발발 시 적을 격퇴할 대응 전력을 의미한다. 칼리스 총리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부차에서 자행한 잔학 행위는 침공 불과 80일 후에 일어났다"며 "이제 모든 사람들이 인계철선 개념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칼리스 총리가 주장하는 적정 나토 병력 규모는 발트3국 국가별로 2만~2만 5000명이다.
발트3국 병력 대폭 증강 요구에 다음주 나토 정상회담서 이 지역 방어계획 쟁점 될 듯
이에 따라 오는 28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담에서는 발트3국의 병력 증강 규모와 주둔 형태가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칼라스 총리의 이날 발언에 대해 나토 관계자는 "세부 방어 계획을 (언론에) 공개할 수는 없다"며 평가를 꺼렸다. 다만 "방위력 강화가 다음주 나토 정상회담에서 중요한 의제가 될 것"이라며 "동부에 더 많은 전력을 배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칼리스 총리 역시 자신의 요구가 "모든 병력이 발트3국에 영구 주둔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타협의 여지가 있음을 내보였다.
‘러시아 역외 영토’ 제재한 리투아니아 “러시아가 보복해도 우리는 준비 돼 있어”
나토 회원국 중 러시아와 가장 인접한 발트3국에서는 최근 러시아와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전날 에스토니아 외교부는 러시아 군용헬기가 18일 자국 영공을 침범한 사실을 밝히며 "러시아는 이웃나라 위협을 중단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리투아니아는 자국을 거쳐 러시아의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로 가는 화물의 운송을 제한, 러시아의 격한 반발을 불렀다.
이에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22일 로이터통신에 “러시아의 전력 공급 중단 등 ‘비우호적 행동’에 대비할 것”이라며 “우리가 나토 일원인 만큼 러시아가 군사적 충돌을 일으킬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발트 3국은 지난해부터 유럽 국가에서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전력망 확충에 나섰다. 여기엔 유럽연합(EU)이 16억 유로를 지원했다.
발트3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에 점령돼 70여년간 지배를 받다 1991년 독립했다. 이러한 역사로 인해 반(反)러 정서가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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