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3일 경찰 치안감 인사 번복 사태에 대해 ‘국기문란’이라고 질타한 것을 두고 경찰 내부가 들끓고 있다. 인사 번복 논란의 책임 소재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행정안전부를 두둔한 게 정부의 노골적인 ‘경찰 길들이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경찰 내부에서는 김창룡 경찰청장이 ‘사표를 제출하는 등 정부의 경찰 길들이기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용퇴론이 재점화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21일 치안감 인사 번복 사태에 대해 “중대한 국기문란 아니면 공무원으로서 할 수 없는 어이없는 과오”라고 강도 높게 질책했다. 특히 “행안부에서 검토해 대통령에게 의견도 내지 않은 인사안이 밖으로 유출되고 이것이 언론에 인사가 번복된 것처럼 나간다는 것 자체는 중대한 국기문란”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사태가 행안부·경찰청 사이 ‘진실 게임’ 양상을 보이고 있는 점이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해당 사태에 대해 “기안 단계에 있는 것을 경찰청에서 인사 공지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경찰청이 희한하게 대통령 결재가 나기 전에 자체적으로 먼저 공지를 해 사달이 났다”며 책임을 경찰청으로 돌렸다. 반면 경찰청은 임의로 기안 단계 인사를 언론에 공표한 게 아니라는 입장이다. 행안부로부터 인사안이라고 공지 받은 후 정식 절차를 거쳤다는 것이다. 대통령 결재를 받기 전 인사를 언론에 공표한 점도 그간 관례라고 설명했다. 사실 규명이 제대로 된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사실상 행안부를 두둔하고 나선 셈이다. 일각에서 김 청장 거취를 압박하고 있다는 해석에 차츰 힘이 실리고 있는 이유다. 윤 대통령 발언이 경찰청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느냐는 데 대해 대통령실이 “말하기 어렵다”는 모호한 입장을 나타내고 있으나 김 청장 사퇴를 압박하는 의미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사태가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경찰 내부에서도 김 청장이 선제적으로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 경찰관은 내부망에 “경찰과 청장님을 위해 용퇴를 간절히 부탁 드린다”며 “경찰 역사에 자존심을 지킨 청장님으로 기억되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 김 청장이 지금 사퇴하면 오히려 행안부의 경찰 통제 추진 등이 맞물린 긴급한 시기에 지휘관 공백으로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없다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경찰 관계자는 “경찰청장이 나가고 나면 사실상 차기 경찰청장 후보군은 윤석열 정부가 면접을 본 인사들”이라며 “차기 경찰청장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는 인사들이 대놓고 경찰 전체를 걸고 싸우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 청장은 현재 자신의 용퇴를 촉구하는 내부 목소리를 일축했다. 김 청장은 이날 퇴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직에 연연해서 청장의 업무를, 해야 할 역할을 소홀히 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김 청장은 이 행안부 장관과 만나 사태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행안부 장관과 최대한 빨리 면담 일정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장관이 김 청장과의 면담을 미루는 것에 대해서도 김 청장을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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