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 이후 제1·2금융권에서 대출이 불가능해진 저신용자의 16%가 불법 사금융에서 연 240%가 넘는 대출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최고 금리 인하 이후 금융 당국이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조달 받는 우수 대부 업체를 선정해 금리 인하를 유도하려고 했으나 시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급전이 필요한 서민에게 신용대출을 늘리기는커녕 리스크가 적은 담보대출을 더 많이 취급한 탓이다. 결국 저신용자의 절반 이상은 불법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불법 사금융에 손을 내밀었다.
서민금융연구원은 27일 저신용자(6∼10등급) 7158명과 우수 대부 업체 12곳을 대상으로 지난해 말 설문조사를 실시해 이같이 밝혔다. 설문에 참여한 저신용자의 57.6%는 법에 따라 등록되지 않은 불법 대부 업체임을 사전에 알고도 돈을 빌린 것으로 집계됐다. 응답자의 68.4%는 법정금리(20%)를 초과했다. 연 240% 이상의 금리를 부담한다는 응답자도 16.2%나 됐다.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금융기관, 등록 대부 업체로부터 돈을 빌리기 더 어려워졌다고 답한 비율도 53%를 차지했다. 대부 업체를 통해 빌린 돈은 ‘주거 관리비 등 기초생활비’로 쓰인 비율이 절반가량(43.6%)을 기록했다. ‘신용카드 대금 등 다른 부채 돌려 막기’라고 응답한 비율이 23.9%로 뒤따랐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12개 우수 대부 업체 중 75%는 신규 대출 승인 고객 수가 감소했다고 답했다. 58.3%는 지난해 최고 금리 인하 후 대출 신청 고객도 줄었다. 우수 대부 업체의 지난해 10월 말 총 대출은 최고 금리를 인하하기 전인 그해 6월 말과 비교해 1.1% 늘었다. 신용대출은 0.6% 감소한 반면 담보대출이 4.4% 증가한 데서 비롯됐다.
우수 대부 업체란 금융위에서 일반 대부 업체에는 금지하고 있는 은행 차입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를 뜻한다. 지난해 7월 최고 금리가 24%에서 20%로 내리면서 저신용자의 대출 공급이 위축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도입됐다. 그러나 최고 금리 인하 이후 우수 대부 업체들 역시 일반 대부 업체와 마찬가지로 서민 자금 공급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 당국이 우수 대부 업체를 선정할 때 저신용자에 대한 자금 공급 의지 등을 심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민금융연구원은 최고 금리 인하로 불법 사금융에 노출되는 피해가 커지는 게 드러난 만큼 최고 금리 인하에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민금융연구원 측은 “제도권 금융기관의 말단에 있는 등록 대부업의 순수 신용대출이 최고 금리를 인하할 때마다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며 “최근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법정 최고 금리를 추가 인하할 경우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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