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연구개발(R&D)의 대혁신과 산학연의 협력 없이는 국가의 생존을 담보하지 못합니다. 우리 대학이 글로벌 대학으로 탈바꿈해 주요5개국(G5) 과학기술 선도국의 토대를 쌓아야 합니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 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 이우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남기태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고산 에이팀벤처스 대표 등은 지난달 30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엔지니어하우스에서 서울대·KAIST·과총·서울경제가 공동 주최한 ‘대학혁명 토크콘서트’에서 “대학이 논문·특허 숫자를 따지는 문화에서 벗어나 영향력이 큰 연구를 하고 기술이전과 창업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우선 국가 R&D의 핵심 축인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논문 중심의 문화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오 총장은 최근 서울대 인공지능(AI) 연구팀의 표절 논란과 관련해 “논문을 양적으로 생산하는 문화가 이어지고 특허도 쓸데없는 것이 계속 나오는 분위기가 있다”고 고백한 뒤 임팩트 있는 논문과 특허, 나아가 기술 사업화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한 평가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광형 총장은 “신임 교수가 와서 (기존 관례대로) 논문을 많이 썼다고 하면 오히려 핀잔을 준다”며 “과거에는 많이 쓰면 좋았지만 지금은 분위기를 바꾸려고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이 회장은 “BTS 등 K컬처가 대성공을 했는데 과학기술에서는 나오기 힘든 구조”라며 “과학기술 분야에서 경제 논리로 비용과 편익을 따져 특허와 논문 숫자만 늘어난다”고 질타했다.
교원 임용·승진 평가 시스템에서 다양성과 경쟁 요소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컸다. 이기원 서울대 푸드테크학과장은 “교수 평가에서 본인이 교육, 연구, 기술 사업화 등 다방면에 걸쳐 목표치를 제시하고 효과를 평가받는 식으로 바꾸는 게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신창수 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부 명예교수는 “서울대 테뉴어 교수 중 1~3%만 탈락시키면 대한민국이 엄청나게 바뀔 것”이라며 “정부 R&D 과제 공모도 외국에까지 문호를 개방하면 결국 우리 경쟁력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는 “난양공대가 급격하게 부상한 것은 경쟁을 촉발하는 평가 시스템에 있다”고 전했다. 실제 최근 10여 년 새 급부상한 난양공대는 실질적으로 테뉴어도 4분의 1밖에 안 주고 테뉴어가 되더라도 절반은 물갈이되는 구조다. 이광형 총장은 “난양공대가 30여년 전 KAIST를 벤치마킹해 학교를 탈바꿈시켰는데 이제는 우리보다 훌쩍 앞서나갔다”며 자성했다.
연구 현장의 자율성과 블록 펀딩을 강조하는 지적도 많았다. 남 교수는 “정부가 대학과 출연연 등 연구 현장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중장기적으로 지원해야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며 “연구기관에 블록 펀딩식으로 통으로 지원하고 투자 우선순위를 정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통령에게도 보고가 됐다”고 전했다.
오 총장은 “일본에서는 교수들에게 기본 연구비를 주고 10~20년 연구하게 하는데 그것이 씨앗이 돼 노벨상이 나온다”며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투자한 뒤 그 사람을 믿고 천천히 평가하는 게 맞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과거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을 할 때 국회에 가면 ‘돈을 얼마나 받는데 결과가 뭐냐’고 했는데 IBS도 10년쯤 지나니 세계적 성과가 나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회장은 “도전을 부추기고 창의성을 발현시키려면 실패를 용인하고 단기 평가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눠주기식 R&D 포퓰리즘 문화와 관 위주의 기획 시스템에 대한 문제점도 거론했다. 이남식 서울예술대 총장은 “실패를 용인하면 과학기술계 등 교육계에서도 박세리·손흥민처럼 스타 플레이어가 나올 수 있다”고 기대했다.
산학연 협력과 기술 사업화를 강조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이광형 총장은 “지난해 KAIST법에 교육과 연구로 돼 있는 설립 목표에 창업도 넣었다”며 “교수들에게 ‘1랩(연구실) 1창업’을 강조해 지난 1년간 창업이 대략 스물 몇 개하다가 육십 몇 개로 늘었다”고 뿌듯해했다. 하지만 정작 기술 사업화를 담당하는 산학협력단이 기업가정신이 부족해 인센티브를 통해 변화를 꾀하는데 결과는 좀 더 봐야 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오 총장은 “그동안 서울대가 창업에 신경을 쓰지 못했지만 김범수·이해진 등 정보기술(IT) 기업인과 방시혁·이수만 등 K팝인들이 나왔다”며 “이제는 창업 지원 조직도 강화하고 변리사를 시켜 좋은 특허가 있는 교수를 찾아 창업도 유도한다. 창업경진대회도 잘된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미국이나 이스라엘처럼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기술 사업화에 장기간 투자하고 전문가를 키우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고 했다.
G5 강국으로 가기 위해 기업가정신을 고취해야 한다는 주문도 많았다. 이 회장은 “산학연이 연구비 수주를 위한 경쟁 관계라 협력이 잘 안 된다”며 “기업가정신을 고취해 실질적인 협력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수 창업 시 이해 충돌 문제로 고생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연구자의 기술이전 시 과도한 세금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는 기술이전 시 보통 연구자가 60%(대학이 40%)를 가져가나 근로소득세로 45%가량을 세금으로 낸다.
남 교수는 “앞으로 교수와 대학원생이 1랩 5~10개 창업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고 대표는 이스라엘의 뛰어난 기술 사업화 조직과 후츠파(담대한·도전적인) 정신을 들며 기업가정신을 강조했다.
조 교수는 “G5 국가로 도약하려면 대학과 출연연 등 R&D 과제 기획에 민간이 적극 참여하고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며 “연구 성과물을 반드시 기술 사업화로 연결 짓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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