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반도체 소재의 한국 수출을 금지한 지 꼬박 3년이 흘렀다. 정치·외교적 갈등에 경제 규제로 대응한 일본의 보복적 선택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았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이 수출규제를 가한 반도체 소재 3개 품목 중 불화수소는 2021년 수입액이 2019년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본에서의 수입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국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이 그 반사이익을 누렸다. 기술력은 갖췄지만 검증받을 기회조차 없었던 중소기업들이 반도체 대기업에 제품을 공급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일본의 기습 공격에 맞서 소부장 자립을 이뤄냈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자화자찬은 다소 민망한 구석도 있다. 일부 소부장의 국산화가 이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한국은 반도체 소재의 상당수를 일본에서 들여오고 있다.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수출규제가 있었던 2019년에는 일본에서의 수입 규모가 10%가량 줄어들었지만 이듬해 다시 증가했다. 불화수소 역시 수출규제 직후에는 일본산 수입이 86% 급감했지만 지난해에는 증가세로 돌아섰다. 압도적인 소부장의 대일 의존도와 통계에 잡히지 않는 우회 수입 등을 고려하면 우리 산업계에서 일본과의 교역이 갖는 중요성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민간기업 간 협력 확대와 경제 단체의 연이은 회동은 한국과 일본 모두에 긍정적 시그널을 주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일본을 방문해 소니·NTT·미즈호그룹 고위 인사와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가 하면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일본 기업인 단체 ‘게이단렌’과 3년 만에 한일재계회의를 열었다.
일본 아사히신문에서는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사례로 들며 “일시적인 적대감에 사로잡힌 제재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했다. 오늘날처럼 글로벌 공급망 확보와 무역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민간 교류 활성화를 시작으로 한일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고 경제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