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원이 넘는 대형 오피스 빌딩을 사들이면서 전액 현금으로 매입하겠다는 기관 투자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시중 유동성이 여전히 적지 않은 데 올 들어 시중 금리가 급등하자 좀처럼 볼 수 없던 투자 풍경이 연출되는 것이다.
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진행된 서울 왕십리 코스모타워 1차 입찰에서 교정공제회를 비롯한 기관 2곳이 약 1200억 원의 매수 자금을 전액 현금으로 지불하겠다고 나섰다. 왕십리 코스모타워는 매도인인 키움자산운용이 지난 2015년 제이알투자운용으로부터 695억 원에 인수한 건물이다.
일반적으로 기관투자가들이 오피스 등 실물 자산을 매입할 땐 전체 자금의 30~40% 이상을 금융기관 대출로 조달한다. 추후 지분투자(에퀴티)로 전환하더라도 매입 시점에서는 ‘브릿지론(일시적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대출)’을 사용했다가 상환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매입 자산의 규모가 1000억원대 이상으로 크고, 건물 등에서 나오는 임대료(배당)로 이자 비용을 감당하고도 수익이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 들어 시중 금리가 급등하면서 투자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부동산 담보대출 금리의 바로미터가 되는 3년물 금융채 금리는 지난달 4.7%를 돌파했다. 1년 전 2% 안팎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2배 넘게 높아진 것이다. 특히 코스모타워가 위치한 왕십리의 경우 서울내 주요 권역(도심권역, 강남권역)에 비해선 입지가 떨어져 건물 매입시 대출을 받을 경우 금리는 5% 초·중반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교정공제회는 지난해 강남 안제빌딩을 매각하면서 약 2년 만에 550억 원 가량의 수익을 챙겼다" 며 "최근 시장 금리가 급등하자 수익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전액 지분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거래가 마무리된 강남 에이플러스에셋타워 역시 전략적투자자(SI)로 참여한 두나무가 약 1000억 원의 자사 지분에 대해 대출 없이 현금으로 전액을 납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왕십리 코스모타워는 성동구 도선동 58-1에 위치한 6200평(약 2만502제곱미터), 지하 6층~지상 14층 규모 오피스 건물이다. 2010년 준공됐으며 현재 삼성화재와 현대해상 등 보험사와 공공기관, 소매점(세븐일레븐·스타벅스) 등이 임차해 있다. 지난 5월 기준 공실률은 0%대다.
한 부동산 전문 자산운용사의 관계자는 "왕십리가 서울의 핵심 권역은 아니라도 교통과 상권이 발달해 있고 올 해 서울 오피스 공실률이 10년내 최저치(4.4%)를 기록하면서 시장에 나올 만한 중형급 오피스 매물도 많지 않아 인수를 원하는 투자자들이 많이 몰렸다"며 "대출 없이 보유 현금으로 인수할 경우 금리 부담 없이 매입 가격을 높여 쓸 수 있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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