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어릴 때 입었을 때보다 나이 들어서 입었을 때가 훨씬 더 맵시가 나는 옷이 있다. 필자에게도 그런 옷이 있다. 바로 흰색 바지, 이름하여 ‘빽바지’다. 특히 여름철 멋 내기엔 흰 바지 만한 아이템이 없다. 흰 바지는 여성들뿐 아니라 멋쟁이 남성들에게도 여름철 ‘머스트 헤브 아이템(must have item)’이다.
과거 우리는 남자들의 흰색 바지 착장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선입견이 있었다. 특히 ‘빽 바지에 빽 구두’는 품위와는 담쌓은 천박하고 헛된 멋만 부리는 사람이나 즐겨 하는 차림으로 치부되곤 했다. 어쩌다 흰색바지라도 입고 모임에 등장하면, 여지없이 ‘기생오라비’라는 불명예스런 이름으로 바람둥이 취급을 받기도 했다. 나름 멋에 신경 쓰던 필자도 어느 날 흰 바지에 흰색(정확히는 아이보리) 로퍼를 신고 출근했다가 두고두고 직장 상사와 동료들에게 조롱거리가 된 아픈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젠 시대가 바뀌었다. 세상도 변했다. 사람들의 관념도, 사람들의 시선도 모두 바뀌었다. 지금이 호기다. 지금이야말로 그동안 괄시를 받아오던 소위 빽바지의 명예를 회복시켜줄 절호의 기회다. 일찍이 이태리 같은 곳에서는 흰 바지가 남성들의 필수품으로 오랫동안 변함없이 사랑을 받아오고 있었고,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꽤 오래전부터 멋쟁이 남성들이 흰 바지를 애용해오고 있었다. 이제 대한민국 차례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흰 바지 명예회복 운동에라도 동참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당신부터라도 고정관념을 깨고 흰 바지 패션을 시도해 보라는 것이다.
올여름은 유난히 덥다. 여름에 남자다움이 되살아나고, 멋을 뿜어내기 좋은 아이템이 바로 화이트 팬츠다. 그러려면 일단 중년의 멋스러움과 여유로움을 만들어 줄 흰 바지부터 하나 구매하자. 소위 기지 바지가 아닌 면 소재면 된다. 화이트 진이면 더욱 멋스럽긴 하다. 그리고 마음껏 올여름 멋쟁이 남자로 변신해보라.
코디는 간단하다. 기본은 흰 바지에 셔츠, 흰색 운동화 조합이다. 린넨 자켓과 드레스 셔츠로 매칭하면 좀 클래식한 분위기를, 자켓 안에 라운드티를 매칭하면 좀 더 캐주얼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셔츠만 입을 때는 배가 너무 나온 경우가 아니면 ‘너입’(바지 안으로 넣어 입는 것)을 추천한다. 시도 때도 없이 밖으로 내 입으면 게으르거나 멋에 전혀 신경 쓰기 싫은 사람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셔츠의 경우 필자는 블랙 셔츠를 즐겨 매칭한다. 세계적 패셔니스타 닉우스터도 즐겨 하는 조합인데, 사실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섹시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꿈의 조합이다. 위아래 코디해서 맞춰 입는 것도 귀찮으면 아예 ‘올 화이트’로 가는 것도 방법이다. 한마디로 ‘올 백패션’이다. 솔직히 자칫 ‘제비’가 되는 다소 위험한(?) 착장이긴 하다. 그러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아니던가. 잘 입으면 이보다 더 섹시할 수 없는 게 바로 올 화이트 패션이다. 필자도 아주 가끔 시도하긴 하는데, 너무 튀지 않도록 살짝 눌러준다. 눌러주는 방법, 이건 영업비밀(?)인데, 바로 톤온톤이 비법이다. 톤온톤으로 한쪽을 살짝 눌러주는 것이다. 흰 바지에 연한 베이지 셔츠를 코디하는 식이다. 물론 흰 셔츠에 연한 베이지색의 팬츠를 매칭해도 된다. 올 화이트엔 신발이나 벨트로 포인트를 줘 단조로움을 없애는 것이 기술이긴 하다.
올여름엔 흰 바지에 블랙셔츠를 매치하고, 선그라스로 살짝 포인트를 준 다음, 분위기 좋은 노천카페에 앉아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셔보라. 연예인이 따로 없고, 이태리 신사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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