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당국이 과도한 원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시장 개입에 나서면서 외환보유액이 한 달 만에 94억 3000만 달러(약 12조 2000억 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8년 11월(-117억 5000만 달러) 이후 13년 7개월 만의 최대 폭 감소다. 하지만 적극적인 시장 개입에도 원·달러 환율이 장중 1300원을 수시로 넘는 등 시장은 여전히 불안하다. 경상수지 흑자 폭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이달 한미 금리 역전 가능성이 큰 만큼 외환보유액이 더 빠르게 소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말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382억 8000만 달러로 전월 말 대비 94억 3000만 달러 감소했다. 올해 3월부터 넉 달째 감소세로 2020년 11월(4363억 8000만 달러) 이후 1년 7개월 만에 가장 적다.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 10월(4692억 1000만 달러)과 견주면 309억 달러 이상 줄어들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외환보유액 적정성 평가(ARA)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0년(0.99)과 2021년(0.99) 2년 연속으로 적정 기준에 미달했다. 올 들어서만 248억 4000만 달러가 감소한 만큼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외환보유액이 빠르게 말라가는 것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으로 환율이 급등하는 등 시장 불안이 계속되고 있는 탓이다. 외환 당국은 환율이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하지만 일시적인 수급 불균형이나 과도한 변동이 발생하면 시장 안정 조치를 실시한다. 올해 1분기에도 환율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83억 1100만 달러(약 10조 원)에 이르는 외환보유액을 순매도해 시장에 개입했다. 외환시장 순거래액을 공개한 2019년 이후 최대 순매도 규모다.
특히 2분기는 원·달러 환율이 약 13년 만에 처음으로 1300원을 돌파하면서 변동성이 확대된 만큼 미 국채 등을 팔아 시장에 적극 개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외환보유액 90%를 차지하는 국채·자산유동화증권(MBS) 등 유가증권은 3952억 7000만 달러로 전월 대비 62억 3000만 달러 감소했다. 예치금도 192억 3000만 달러로 전월보다 26억 4000만 달러 줄었다.
문제는 미 연준의 긴축으로 인한 강달러 흐름과 환율 변동성 확대가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연준이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지난달부터 대차대조표도 축소하고 있는 만큼 신흥국 중심으로 달러 유동성이 줄어들고 있다. 이 때문에 당국 개입에도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넘는 등 약발이 통하지 않고 있다. 이날도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3원 20전 오른 1300원 30전에 거래를 마쳤다. 환율이 1300원을 넘은 것은 지난달 23일 이후 8거래일 만에 처음이다. 외국인투자가의 역송금 등으로 환율 급등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결국 환율은 잡지 못한 채 ‘실탄’만 소진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당장 외환보유액이 충분해 보여도 위기 상황이 닥치면 예상보다 빠르게 줄어드는 만큼 충분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008년에도 외환보유액이 IMF 권고 수준보다 8% 많았으나 사후 분석 결과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성욱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미 연준이 예상보다 빠르게 금리를 올리면서 환율이 추가 상승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나라 시장 규모를 봤을 때 외환보유액만으로 환율을 방어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기준금리 인상이나 다른 수단을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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