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대출 금리는 내리고 한도를 늘리는 방식으로 가계대출의 문턱을 낮추고 있지만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4~6%를 웃돌면서 저소득층과 청년층 대출자에게는 여전히 부담스럽다. 특히 2030 세대가 많이 사용하는 전세대출 금리는 지난해 말 연 2%대에서 현재 4% 중반까지 뛰었지만 금리 인하 혜택은 없다. 전문가들은 시중은행들이 금융 취약 계층에 대출 부담 완화를 위해 쥐어짜기식으로 금리를 내리고 있지만 금리 상승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마저도 곧 한계에 부딪힐 것으로 전망한다.
5일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주담대 고정형(5년 혼합형) 금리는 4.48~6.252%다. 영업일 기준 약 일주일 전(4.74~6.515%)보다 하단은 0.26%포인트, 상단은 0.263%포인트 각각 떨어졌다. 상단 금리가 연 7%대까지 치솟았던 주담대 금리가 일주일 만에 6%대 초반대까지 내려갔고 5대 은행 중 3곳의 상단 금리는 5%대를 기록했다. 하단 금리도 3곳이 4%대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금리 하락 폭이 커진 데는 최근 금융 당국의 ‘이자 장사’ 경고와 혼합형 주담대의 준거 금리인 금융채 AAA등급 5년물 금리 하락세까지 맞물렸기 때문이다.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3.948%(민평 평균)였던 금융채 AAA등급 5년물 금리는 27일 4.012%까지 뛰었다가 전날 3.799%까지 떨어졌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24일부터 고정금리 대출에 적용하던 1.3%포인트의 우대금리 적용 대상을 기존 7등급 이내에서 10등급까지 확대했다. 매일 금리를 산출하는 신한은행은 전날 2.08%였던 가산금리(혼합형 주담대 기준)를 하루 만에 0.01%포인트 인하(2.07%)했다.
시중은행들은 금리 인하와 함께 최장 대출 기간을 기존 30~33년에서 40년까지 늘리는 방식으로 주담대 대출 한도도 확대했다. 농협은행은 이날 대출 한도를 기존 5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대출 기간은 최장 33년에서 40년으로 늘린 ‘NH모바일아파트대출2.0’을 새롭게 선보였다. 4대 은행도 모두 대출 한도를 40년까지 늘렸다. 지난해 8월 이후부터 약 10개월간 ‘연봉 이내’로 묶였던 은행들의 신용대출 한도도 이달부터 풀리면서 금융 소비자는 자신의 연봉보다 더 많이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대출자의 신용 등급이나 직장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한도가 많게는 연 소득의 2∼3배까지도 늘어나게 된 셈이다.
은행들의 가계대출 문턱 낮추기에도 불구하고 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 상환 부담이 여전히 높다 보니 2030 대출자나 저소득층이 느끼는 ‘대출 완화’ 체감도는 높지 않다. 주담대 금리나 한도가 신용 등급보다는 주택에 따라 결정되지만 연 4~6%는 청년층이나 저소득층의 이자 상환 부담을 키울 수밖에 없다. 연 금리 4.33%로 서울에서 9억 원짜리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3억 6000만 원을 대출(원리금 균등 방식·대출 기간 30년) 받으면 매달 원리금 부담액은 178만 7885원이다. 대출 기간을 10년 더 늘려도(40년) 부담액은 약 20만 원 줄어든 157만 9298원에 달한다. 2030 맞벌이 부부의 소득 3분의 1이 대출금을 갚는 데 들어가는 셈이다. 전세대출은 더 박하다. 통상 전세대출 금리는 신규 자금조달비용지수(COFIX·코픽스)나 금융채 1년물을 기준으로 사용하는 상황에서 대부분 시중은행의 전세대출 금리는 오히려 오름세를 타고 있다. 실제 지난해 9월 연 2.1% 변동금리로 1억 2000만 원의 전세대출을 받은 A 씨는 당시 원금 52만 원에 이자 20만 원을 합쳐 72만 원을 매달 상환했지만 이달 들어 금리가 연 4.41%까지 오르며 100만 원가량을 매달 상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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