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태조 때부터 철종까지 472년간 역대 왕의 행적을 기록한 ‘조선왕조실록’. 임진왜란 때 실록들이 소실되자 왕실은 이를 4벌로 제작해 전국 각지에 나눠 보관했다. 그 중 하나인 오대산 사고(史庫)본 761책은 일제강점기인 1913년을 전후로 불법 반출됐다. 도쿄제국대학의 소장품이 됐고 1923년 간도대지진으로 대부분이 소실됐다. 74책이 겨우 남았고 그 중 27책이 1932년 경성제국대학으로 이관돼 서울대 규장각으로 돌아왔으나, 나머지 47책은 일본에 있어 속을 태웠다. 정부와 민간의 노력으로 2006년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이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 많은 국민들이 눈물 흘리며 기뻐했다. 이 뿐만 아니다. 조선총독부가 기증하는 형식으로 일본 궁내청에 빼돌린 조선왕조의궤를 비롯한 왕실 왕실 도서는 150종 1205책에 이르렀다. 여러 노력으로 2010년 일명 ‘한일도서협정’이 체결됐고 100년 만에 왕실 도서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들 ‘환수’ 소식은 해외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를 조사·연구해 환수·활용하는 국외소재문화재 탄생의 원동력이 됐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설립 1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이 7일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개막한다. 외국에서 돌아온 환수문화재 40여점을 한 자리에 모은 귀한 전시다.
불화·청자와 함께 정교하고 화려한 고려 공예의 대표로 꼽히는 나전칠기는 전 세계에 불과 20여점 정도만 전한다. 정작 국내에는 완전한 형태의 고려 나전칠기가 2점 밖에 없던 상황에서, 지난 2020년 일본에서 ‘나전국화넝쿨무늬자합’의 환수됐다. 폭 9.8㎝의 작은 유물이지만 수백 개 나전 조각들이 영롱한 빛을 내뿜어 전시장을 밝힌다. 그 옆 ‘나전매화·새·대나무무늬상자’는 지난해 일본 개인소장가에게서 구입해 이번에 최초로 공개됐다. 검은 바탕에 매화가지와 대나무가 어우러지고, 그 위에 새가 노니는 장면이다. 18~19세기 유물이나, 국내에 전하는 나전상자가 워낙 희소해 활용 가치가 높다.
지난 3월 외국 경매에서 매입해 처음 공개된 ‘열성어필’은 조선 왕들의 글씨(어필)를 탁본해 엮은 희소 유물이다. 백자 표면을 구리 안료로 장식한 ‘백자동채통형병’도 처음 선보였다. 한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가 소장하면서 국외로 반출된 유물이다. 선비들의 독서모임 장면을 조선 초기 산수화 양식으로 그려 기록한 ‘독서당계회도’도 일반에 공개되긴 처음이다.
굽이치는 금강산 산세와 쭉 뻗은 구룡폭포를 보여주는 ‘겸재정선화첩’은 1910~20년대 선교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던 수도사가 소장하면서 독일로 반출됐다. 1976년 한 독일 유학생이 상트오틸리엔수도원 선교박물관에 전시된 겸재 화첩을 발견해 국내에 알렸고 40년의 오랜 신뢰를 바탕으로 2005년 영구대여 방식으로 성베네딕도회왜관수도원에 반환돼 고국에 돌아왔다. 조선 사대부의 묘에 세워졌던 문인석(文人石) 한 쌍은 골동품상에 의해 반출돼 독일로 갔고 1987년 독일 로텐바움박물관이 구매해 소장했던 유물이다. 재단이 불법 반출을 확인하자 박물관이 자발적으로 반환해 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으로 돌아왔다.
어느 것 하나 사연 없는 유물이 없다. 재단이 지난 10년간 국내로 환수한 문화재는 모두 784점이다. 기증 680점, 매입 103점, 영구 대여 1점 등이다. 재단 직원들이 그간 활동한 비행거리를 합치면 총 629만㎞. 지구는160바퀴를 돌고, 달까지 8번 이상 왕복할 수 있는 거리다.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로 유명한 게임사 라이엇게임즈는 현재까지 68억원 이상을 기부해 문화재 환수에 기여했다.
갈 길은 멀다. 재단이 올해 1월을 기준으로 파악한 해외 소재 우리 문화재는 25개국 21만4208점에 이른다. 전시는 9월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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