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72년 역사상 첫 빅스텝(0.50%포인트 인상)을 선택할까? 아니면 기존 방식대로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을 할 것인가?
물가가 1998년 이후 첫 6%대고, 환율이 2008년 이후 처음으로 장중 1310원을 넘었다. 지표가 발표될 때마다 비교 시점이 외환위기 또는 금융위기다.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에 열리는 만큼 이번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금리를 올릴지 말지가 아니다. 금리를 얼마나 올리게 될지가 관심사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16일 빅스텝 가능성에 대해 “다음 금통위까지 3~4주 정도 남아있어서 많은 변화가 있을 수 있다”며 “그사이 나타난 시장 반응을 보고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 발언대로 기대인플레이션이 3.9%,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0%로 발표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시장 반응도 빅스텝으로 쏠렸다.
하지만 경기 침체 우려에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아래로 떨어지면서 계산이 복잡해졌다. 가계부채 때문에 빅스텝이 경기를 죽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빅스텝을 안 한다면 실기(失機)했다는 비판부터 직면할 수밖에 없다. 어떤 선택을 하든 욕을 한 번 먹을 수밖에 없다면 금통위는 물가 안정을 위해 빅스텝을 단행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물가 정점 아직인데…빅스텝 안 하면 ‘실기론’ 대두
먼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약 24년 만에 6%대를 기록한 만큼 빅스텝을 해야 할 명분은 충분하다. 기대인플레이션 역시 3.9%로 한 달 만에 0.6%포인트 오르면서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안정시켜야 할 필요성도 커졌다. 기대인플레이션이 오르면 가계는 구매력 하락을 우려해 명목임금 상승을 요구하고 이는 상품의 생산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기대인플레이션이 높다면 기업도 수요가 유지될 것으로 보면서 가격 인상을 추진한다. 이게 반복되면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된다.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달라는 말을 하는 것보다 기준금리를 과감히 올리는 것이 ‘물가·임금 악순환’을 막을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긴축에 속도를 내는 이유 역시 과도한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꺾기 위해서다. 고물가 상황이 고착화된다면 금리 인상 속도는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물가 정점이 지나지 않은 만큼 빅스텝을 하지 않았을 때 실기론이 대두될 가능성이 크다. 통계청은 물가가 전월 대비 0.6~0.7%씩 오르는 흐름이 이어진다면 향후 물가가 7~8%까지 오를 수 있다고 봤다. 한은 역시 공급 측 요인에 거리두기 해제로 인한 수요 측 요인과 전기료·도시가스요금 인상이 겹치면서 물가가 당분간 높은 오름세를 이어갈 것으로 봤다. 물가 정점이 지나지 않은 만큼 빅스텝을 하게 된다면 지금이 적기라는 분석이다.
우리나라와 경제 상황은 다르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가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을 하는 점도 압박이다. 호주중앙은행(RBA)이 사상 첫 연속 빅스텝을 하는 등 각국이 긴축에 속도를 내는 상황에서 금통위가 빅스텝을 하지 않으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고환율 역시 빅스텝을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다. 1300원까지 오른 환율이 수입물가를 통해 물가 상승을 자극하고 있다. 외환당국은 올해에만 외환보유액을 248억 달러 넘게 줄이면서 환율을 방어 중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역부족인 만큼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요 감소 우려에 유가 급락…물가 아닌 경제만 잡나
반대로 코로나19 이후 가계부채가 1860조 원으로 급증한 가운데 경기 침체 우려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는 점은 부담이다. 우리나라는 긴축에 속도를 내는 다른 나라와 달리 가계부채 문제가 취약한 상태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106.6%다. 미국 78.0%, 일본 67.6%. 프랑스 67.1%, 독일 57.3% 등 주요국보다 높다.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지는데 신규 대출 가운데 변동금리 비중은 82.6%로 8년 4개월 만에 최고치인 점도 불안 요인이다.
문제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밑으로 떨어지면서 우리나라 경제를 짓누르고 있던 고유가 상황이 해소될 조짐을 보인다는 것이다. 국제금융센터는 “국제유가 급락은 세계 경제에 대한 시장 불안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의미”라며 “앞으로 시장의 관심이 ‘공급 불안’에서 ‘수요 우려’로 이동하면서 국제유가 하방 압력이 점차 강화될 수 있다”고 했다. 수요 침체가 국제유가 하락으로 이어진 만큼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꺾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빅스텝을 하더라도 공급 측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다는 보장 역시 없다. 공급 측 영향이 큰 인플레이션에 빅스텝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수요를 꺾어서라도 물가를 잡겠다는 의지다. 이런 상태에서 빅스텝을 하면 소비만 위축시켜 실물 경기가 침체되는 ‘오버킬(overkill)’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소비 심리나 기업 체감 경기 모두 꺾이는 중이다.
모건스탠리는 물가가 6%대로 올라서자 7월 금통위 전망을 베이비스텝에서 빅스텝으로 바꿨지만 이번 인상사이클에서 최종금리가 2.75%가 될 것이라는 전망은 유지했다. 연말로 갈수록 물가 상승 위험보다 성장 둔화 위험이 더 커질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상대적으로 건전하지 못한 가계 부채 상황 때문에 기준금리가 급격히 높아지면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취약 차주의 디폴트(채무 불이행)는 물론이고 구매력 약화로 소비 침체가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빅스텝 전망이 대다수…“기회비용 줄이려면 강도 높여야”
통화정책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빅스텝을 전망하는 기관은 점차 늘고 있다. 7월 빅스텝을 예상하는 곳은 JP모건, 모건스탠리, 블룸버그, 씨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한국투자증권, 대신증권, SK증권, 신영증권, KB증권, 유진투자증권, NH투자증권 등 다수다. 반면 베이비스텝을 예측하는 곳은 노무라증권과 ING 두 곳 정도다.
한은 내부에서도 물가 불안을 빠르게 안정시키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긴축의 기회비용인 경기 훼손은 어쩔 수 없이 발생하므로 감내해야 하는 부문”이라며 “그나마 기회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인플레이션을 빨리 잡는 것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고강도 긴축을 시행해야 인플레이션 억제 효과가 높고 궁극적으로 경기에 미치는 타격이 적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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