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회가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에 원자력발전과 천연가스발전을 포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에 한국의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도 원전이 포함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환경부는 이달 말이나 내달 초 원전을 포함한 K택소노미 초안을 내놓을 계획입니다.
유럽연합(EU) 의회는 최근 EU 집행위원회가 지난 2월 제안한 ‘원자력 발전 및 천연가스의 택소노미 포함안’을 가결했습니다. 투표에 참여한 639명 중 찬성이 328명, 반대 278명, 기권 33명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오는 11일까지 EU 이사회 27개국 중 20개국 이상이 반대하지 않으면 원자력 발전과 천연가스는 내년 1월부터 그린 택소노미에 최종 포함됩니다. 사실상 EU 택소노미에 원자력발전 포함이 확정된 셈입니다.
이에 K택소노미에 원자력 발전을 포함하는 정부의 드라이브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환경부는 K택소노미 개정안 초안을 7월 말이나 8월 초에 내놓은 뒤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9~10월 중 확정할 계획입니다. 녹색분류체계 적용 시범사업이 올해 끝나고 내년부터 녹색채권 가이드라인 등에 녹색분류체계가 전면 적용되는데 이러한 일정을 반영했습니다.
연말까지 진행하는 시범사업에는 국민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신한은행, 농협, 산업은행 등 6개 은행과 한국수력원자력, 남동발전, 중부발전 등 3개 전력공기업, 현대캐피탈이 참여합니다. 전기차 구매 시 저리로 대출할 수 있는 캐피탈 사업을 비롯해 재생에너지·천연가스 사업 위주로 1조 2000억원의 재정이 투입됩니다.
개정할 K택소노미에는 원전이 포함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시범사업 중인 현행 K택소노미에는 원전이 빠졌으며 액화천연가스(LNG)발전은 전환 부문(진정한 녹색경제활동은 아니지만,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과도기적으로 필요한 경제활동)에 조건부로 포함됐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2030년까지 에너지 내 원전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30% 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히며 전 정부 탈원전 정책을 공식 폐기했고 국정과제에도 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하겠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앞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다음 달까지 원전을 K택소노미에 넣겠다고 밝혔습니다.
환경부는 그간 유럽연합(EU)의 택소노미 제정 과정을 지켜보며 K택소노미를 확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런데 EU 택소노미에서 가스 발전과 함께 원전이 포함되며 K택소노미에도 원전이 포함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일각에서는 EU 택소노미에 원전 허용 조건으로 제시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이나 ‘사고 저항성 핵연료 사용’ 등이 K택소노미에 적용되면 한국 원전은 조건을 만족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여러 국가가 모여 있는 EU의 조건을 국내에 곧바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적지 않습니다.
가스 발전의 경우 EU 택소노미에서 KWh당 270g 이하의 탄소를 배출해야 한다고 못박은 반면 K택소노미 초안에서는 KWh당 340g로 EU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의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원전도 가스처럼 유럽보다 훨씬 완화된 조건을 내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 역시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와 EU는 상황이 다르다”라면서 EU처럼 방폐장 확보 기한이나 사고 저항성 핵연료 사용 시점을 못 박기는 어렵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체코·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도 자본 확보가 수월해지면서 윤 대통령의 공약인 원전 수출도 탄력받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특히 체코·폴란드 등 우리 정부가 역점을 두던 유럽 수출문이 열렸다는 평가입니다. 원전 업계 관계자는 “해외에 원전을 수출하려면 자기 돈 갖고 가서 짓고 추후 정산받는 형태다”며 “택소노미 안에 들어야 은행에서 돈을 쉽게 빌릴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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