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상황이 악화되면서 법원의 도산 상담 창구를 찾는 취약계층도 덩달아 늘고 있다. 수입이 끊긴 상황에서 간간히 정부 지원금으로 버티고 있지만 금리 인상에 소액 대출금마저 갚기 어려워지자 결국 법원을 찾고 있다.
14일 서울회생법원에 따르면 법원이 운영 중인 상담센터 뉴스타트에 지난달에만 200명이 방문했다. 하루 평균 10명꼴이다. 5월 175명, 하루 평균 8명에서 14% 급증했다. 회생법원은 2017년 3월 개원과 동시에 채무자들이 변호사·법무사 등 파산·회생 전문가들에게 회생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뉴스타트를 운영하고 있다.
뉴스타트가 설문에 응한 방문자들의 연령대를 분석한 결과 2명 중 1명은 5060세대(50대 27%·60대 25%)로 나타났다. 70대 이상도 15%에 달할 만큼 상당수가 고령자였다. 응답자 중 45%는 정부 지원 수급자였다. 방문자 61%는 보유 자산이 전무했다. 방문자의 70% 이상이 50대 이상임에도 주택을 소유한 사람은 17%에 불과했다. 45%가 월세살이였고 지인·친척집에 무상 거주한다고 답한 채무자는 20%에 달했다.
채무 지급 불능 사유로는 사업 실패(21%)가 가장 많았지만 19%는 대출 이자 등 금융 비용 부담을 꼽았다. 올 들어 금융 당국이 금리를 대폭 올리는 등 긴축 정책 강도를 높이면서 채무 상환 부담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채무자 대부분이 수입이 적고 불규칙한 탓에 응답자 40%가 제2금융기관(23%)이나 대부 업체(13%)에서 돈을 빌린 만큼 높은 이자 부담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채무자들의 부채 원금액을 조사한 결과 5000만 원 이하가 39%로 가장 높았고 5000만 원 초과 1억 원 이하(27%), 1억 원 초과 3억 원 이하(19%) 순으로 응답률이 높았다. 66%가 이자 상승에 1억 원 이하의 빚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빠진 상태라는 의미다.
문제는 도산 제도를 가장 필요로 하는 대상이 취약계층임에도 정작 이들은 제도를 잘 모른다는 점이다. 법원 홍보물을 보고 상담을 받으러 왔지만 소송 비용 부담 없이 회생·파산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방문자 78%는 소송 구조 제도의 존재를 몰랐다고 답했다. 소송 구조는 법원이 당사자 신청 또는 직권으로 인지대, 변호사 보수, 송달료, 증인 여비, 감정료 등 소송 비용을 지출할 능력이 없는 경우 납입을 유예 또는 면제해주고 비용 부담 없이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전문가들은 저소득층의 도산 위험이 커지는 데도 채무자들이 구제 제도를 몰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법원이나 정부 산하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채무 조정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고(故) 조유나 일가족 사건도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서울회생법원 관계자는 “도산 제도를 이용하면 재기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며 “채무자들이 제도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